인생과 날씨
인생과 날씨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2.1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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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맑았다가도 흐려지고, 흐렸다가도 맑아지는 것이 날씨이다. 날씨의 이런 모습을 단순히 변덕이라고 폄하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 인생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날씨에 청우(晴雨)가 번갈아 나타나듯이 인생에는 길횽화복(吉凶禍福)이 수시로 교차한다. 조선(朝鮮)의 시인 김시습(時習)은 날씨에서 인생을 읽어냈다.

 

맑고 비 오고(乍晴乍雨)

 

乍晴還雨雨還晴(사청환우우환청) 언뜻 갰다가 다시 비가 오고
                           비 오다가 다시 개니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하늘의 도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세상 인정이랴

譽我便是還毁我(예아변시환훼아) 나를 기리다가 문득 돌이켜 나를 헐뜯고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 공명을 피하더니
                           도리어 스스로 공명을 구함이라.

花開花謝春何管(화개화사춘하관)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봄이 어찌 상관하랴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부쟁) 구름 가고 구름 오되 산은 다투지 않네

寄語世人須記認(기어세인수기인)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기억해 알아두라.

取歡無處得平生(취환무처득평생) 기쁨을 취하려 하지만
                           평생 변치 않음을 얻을 곳이 없음을.

 

세상만사 변하지 않고 언제나 그대로인 것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날씨만큼 변화무쌍한 것도 없을 것이다.

비가 오는가 싶더니, 언뜻 개고, 갰는가 싶으면 또 비가 오는 것이 날씨이다.

하늘이 관장하는 날씨조차도 이럴진대, 하물며 사람 사는 세상의 인정은 말해 무엇 하리오?

세상 인정은 조변석개(朝變夕改)도 모자랄 지경이다. 나를 칭찬하는가 싶더니 문득 보니 내 욕을 하고, 공명(功名)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한 사람이 도리어 공명(功名)에 목을 매니, 이것이 세상 인정이다. 부와 명예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세상사에 초연한 듯 살던 사람이 거꾸로 부와 명예를 찾는 일도 허다한 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이처럼 변화가 심한 것은 사람 세상뿐만이 아니고 자연도 마찬가지이다. 봄철에 꽃도 피었는가 하면 곧 지고 말지만, 봄도 그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제멋대로 피고 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산 위의 구름은 어디론가 가는가 싶더니 다시 어디선가 나타나지만, 그래도 산은 이것에 대해 따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기쁨을 얻고 싶어 하지만, 이 또한 평생 변치 않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시인은 일갈한다.

하루에도 맑았다 흐렸다 오락가락하는 날씨는 한시도 같음이 없는 인생의 모습과 흡사하다. 인생의 희로애락(喜哀)은 수시로 바뀌어 나타난다.

지금 이 순간의 기쁨을 평생 간직하려 해도 이것은 불가능하다. 기쁨이 슬픔으로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거꾸로 슬픔이 기쁨으로 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인생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인생은 늘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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