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만나다
달을 만나다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6.02.1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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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최명임<수필가>

잠결에 뒤척이다 눈을 떴습니다. 어??? ??. 달이 창가에 와 있습니다. 반달도 쪽달도 아닌 휘영청 밝은 보름달입니다. 이 야심한 밤에 기척도 없이 내 방에 들러 온몸으로 나를 품어 내려다보고 있었나 봅니다. 오랜만이다. 환하게 웃으며 반깁니다.

언제 뵙고 왔던가, 모정지심을 느낍니다. 내 오랜 벗이 나를 찾아온 듯도 하여 반갑고 정겹습니다. 아득히 먼 시간의 강을 건너 산골 그 언덕에 구성지게 피어오르던 한밤의 아리아. 한 사내 나를 품어 지어미로 거듭나던 날 겨운 행복 기억해 주마 흐드러지던 달빛.

낮에는 그윽한 눈빛 내리깔고 하늘을 돌아 밤을 채비하고, 밤으로는 발등 부옇게 걸어올라 운명처럼 중천에 걸리던 달입니다. 달빛에 피고 지던 박꽃이 어느 날 저를 닮아버린 순간을 놀랍게 바라보던 달. 아니 내 어린 날을 송두리째 보아왔던 그 달이 오늘밤 못견디게 그리움으로 찾아왔나 봅니다. 격한 마음으로 나도 끌어안았습니다.

갑자기 파고드는 아련한 통증, 이 무슨 감정일까요. 흡족하게 표현할 글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적나라한 회고의 시간 깊은 밤의 충격입니다. ‘달이 뜨고 지고했더란 말인가?’ 나는 어쩌다 저 달을 놓쳤습니다. 어느 순간 덩그마니 떠올라 무정한 나를 기다린 울 어머니같이 내려다보고 있었겠지요. “인내가 여인의 미덕이다, 희생이 어미의 도리다.” 그리 살라 다독이며 그리 살다 가신 내 어머니처럼 일삼아 달포를 걸어 나를 찾아 나섰던가요. 그믐밤엔 어디서 달빛 익느라 서성이다가 오늘밤 이렇게 날 흔들어 깨웠을까요. 반갑고도 야속합니다.

사느라 그 북새통에 달이 뜨는 사실조차 잊어버렸습니다. 진작부터 떠올랐을 저 달을 만났더라면 속엣말도 한사코 털어놓고 볼 것을, 잃어버린 것이 많았으니 사는 게 그리 헛헛했던 게지요.

요요(寥寥)하고 요요(耀耀)한 달빛입니다.

해는 언제 보아도 강렬하고 눈부신 빛입니다. 시작이요, 희망이며, 열정이고 옹골찬 기개입니다. 언제나 독야청청 중천으로 오릅니다. 그런데 왜 달은 고요하고 외롭고 쓸쓸하고 저리 처연하게도 서러운 빛깔일까요. 빛이되 눈부심은 없고 그럼에도 빛나고 온화하고 다정함을 지녔을까요.

감정이 복받쳐 마주보고 서면 오라지게 더 슬프고 더 아프고 더욱 서러워 그 감정이 배가되는 상황극에 빠집니다.

달이 가지고 있는 속성에 내 감정이입으로 희석이 되어 결국에는 치유라는 온전함을 만들어 내는, 아무리 보아도 달은 어머니의 따스한 가슴팍입니다.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던 모성입니다. 오늘밤도 어느 한쪽 치우치지 않고 휘영청, 다정하고 온화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달은 처음부터 그런 빛깔이 아니었습니다. 분명 진노랑이나 진청색으로 태어났다가 어느새 무채색이 되어버린 겝니다. 여인의 색깔이, 어미의 색깔이 물들어 바래버린 것입니다. 긴 세월 오갈 데 없는 한이 죽어서 그 속에 묻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서럽고 애달픈 무채색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달을 만나고 달빛에 취하고 달빛에 기대어 넋두리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삭이지 못한 가슴속 응어리를 토해 놓고 꺼이꺼이 울기도 할 것입니다.

달은 그저 묵묵히, 조용히 내 안을 들여다보며 치유의 손길을 내미는 어머니의 다정하고도 아린 가슴팍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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