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그런 건 없어
이유? 그런 건 없어
  • 김희숙<수필가·산남유치원 교사>
  • 승인 2016.02.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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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이제 공부 더는 못하겠다. 저녁 먹자! 내가 살게.” 그녀가 전화를 걸어왔다. 긴 세월 동안 그녀는 시험 준비를 했다. 여러 번의 낙방을 되풀이하는 그녀에게 나는 말했다. “공부 그만하고 즐겁게 살아. 내가 같이 놀아줄게!”라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올해만 더하고 안 할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세월이 10년을 훌쩍 넘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접는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말이지만 그녀가 시험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퇴근 후 월남쌈집에서 만났다. 그녀는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 내게 손을 흔들었다. 밝게 웃는 모습이 여전히 예뻤다.

그녀는 대뜸 나를 보고 정치를 할 거냐고 묻는다. 난 의아해서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그런 사람들이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하더라고 한다.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는 내게 그녀가 묻는다. “그럼 돈 벌려고 하는 거야?” 난 아니라고 웃었다. 그녀가 또 묻는다. “그럼 왜 책을 내는 거야?” 난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그러자 그녀가 말한다. “돈 버는 일을 해야지!” 나는 조용히 그녀의 눈을 보며 말했다. “사는 것은 경제적인 가치로만 매김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난 글을 쓸 때 내 인생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써. 산만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세상도 사물도 더 자세히 보게 되고 그러면서 내 사고의 주름을 깊게 하는 거지. 생각 없이 그냥 사는 사람의 삶과 생각을 해가면서 사는 사람의 삶은 다르다고 생각해. 물론 글을 쓴다고 다 인생을 잘사는 건 아니지만 내 삶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하거든. 그리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살려고 노력을 하며 살게 되는 거지.” 그녀는 이해 못 하겠다는 듯 눈을 말똥말똥 굴린다. 그런 반짝이는 눈을 가진 그녀가 너무나 귀엽게 다가왔다.

그녀는 여전히 이해 안 된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돈이 되는 일에 시간을 써야지.” 나는 대답했다. “살면서 돈만 벌고 또 돈 벌어서 밥만 먹고 사냐? 그게 어디 사는 거야? 돈 버는 게 하찮은 일이라는 게 아니라 그것도 중요하지만 인생 전부가 아니란 거지. 밥은 먹을 만큼 직장에서 일하잖아. 영혼을 가꾸는 일도 필요하지.”

그녀는 여전히 이해 못 하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난 그저 웃었다. 이유 없이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때로는 이해 못 할 일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런 그녀가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나 일차 합격이래~ .” 그녀의 천진한 미소가 수화기 너머에서 밝게 빛나는 것 같았다. 진심을 담아 축하인사를 했다. 제발 합격했으면 한다.

내일은 그녀가 이차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혹시 전화를 하면 더 긴장하게 될까 봐 일부러 난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냥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녀가, 귀여운 그녀가 꼭 합격하길. 백설기처럼 하얀, 때 묻지 않은 그녀가 바라는 일이 꼭 이루어지길. 그래서 그녀도 아무 목적이나 이유 없이 즐길 수 있는 그런 일을 해 보길. 이유나 목적이 없이 하는 일도 가끔은 가슴을 뛰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게 되기를. ‘이유? 그런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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