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끝나지 않았다
희망은 끝나지 않았다
  • 임성재<칼럼니스트>
  • 승인 2016.02.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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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지난 5일 새벽 5시, 청주시청 마당은 수백 명의 시청직원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시청 정문 옆에 설치된 청주시노인전문병원 노동자들의 농성천막을 둘러싸고 ‘행정대집행’이라는 명목으로 철거작업에 들어갔다. 경찰병력의 호위 속에 부시장의 진두지휘로 진행된 철거작업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듯 1시간 만에 끝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담장이 처졌다.

평소에는 길을 지나거나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에게 쉼터의 역할을 하고 화장실을 제공해주던 시청내의 작은 공원이 철망으로 막혀버린 것이다.

이승훈 청주시장은 새벽같이 철거작업에 동원됐던 시청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당신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시노인병원 해고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놓고 수탁기관인 의명의료재단과 마지막까지 협의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청주시가 단식투쟁과 분신시도도 마다 않고 9개월을 거리에서 살았던 노동자들의 분노와 절규에 대해 내놓은 해답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청주시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변한 것은 없다. 천막이 철거되고 철망이 쳐졌을 뿐 시노인병원 노동자들의 농성은 계속되고 있다. 그들은 시가 쳐놓은 철망 앞에 자리를 깔고 얇은 투명비닐로 바람과 추위를 막으며 인도와 철망의 경계 사이에 앉아 있다. 천막이 가려주었던 조금의 자유로움은 사라지고 그들의 손짓하나 몸짓하나는 지나는 시민들의 시선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그렇게 길에 앉아 설 연휴를 보내면서도 그들은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저는 학교를 졸업하고 천안에서 잠깐 일하다가 시노인병원이라 민간병원보다 훨씬 안정적일 것 같아서 옮겨왔습니다. 그런데 선배님들이 한두 분씩 병원을 떠나는 거예요. 그래도 열심히 일만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병원이 문을 닫았어요. 이러면 안 되지 하는 생각에 노조의 농성에 참여하게 됐는데요, 농성 천막에서 여름과 가을, 겨울을 보내면서 우리 사회가 모두 정의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일을 못해서 경제적으로 힘들고, 천막생활을 하다 보니 건강도 나빠졌지만 누구라도 이렇게 나서지 않으면 우리사회가 변할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오라는 병원이 있었는데도 마다하고 이 싸움을 하고 있는 거예요.

수입이 없어서 넉넉하지 못하신 부모님께 생활비까지 타 써야하는 형편인데요, 처음에는 어린 딸이 천막에서 자고하니까 농성하지 말라고 만류하시던 부모님도 이제는 응원해주고 계셔요. 빨리 병원이 정상화되고 우리 모두가 다시 일을 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지금까지 부모님께 못했던 효도를 해드리고 싶어요.”

“저는 예순세살 주부인데요, 간병인 경력은 7년째입니다. 간병인을 시작한 것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죠. 화물차를 운전하는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생활을 하기가 어려우니까요. 시노인병원에는 2011년에 입사 했구요, 노조에는 2014년에 가입했네요. 처음에는 노조를 알지도 못했고 많은 나이에 일하는 것만도 고마워서 노조활동을 반대했었어요. 그런데 내가 근무하는 5층 직원들이 다 가입하더라구요. 그래서 덩달아 가입했죠.

사실 시노인병원에는 정년이 없어요. 60세가 넘은 사람들도 많이 근무했죠. 그리고 병원 경영진도 ‘나이 안 따진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70세까지라도 근무하라’고 해서 정말 신명나게 일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정년이 넘었다며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전화문자가 왔어요. 앞이 깜깜하고 너무 억울하더라구요. 그래서 이 농성을 하고 있는 거예요. 힘없는 노동자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야속해요. 그동안은 공무원들은 못살고 어려운 시민의 편 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아니더라구요. 대출을 받아 생활비에 보태고 있지만 다시 복직 될 때까지 싸울 거예요. 힘없는 사람들도 당당한 이 사회의 한 식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청주시청 정문 앞, 청주시 노인전문병원 노동자들이 전원복직을 주장하며 말 그대로 노상농성을 이어가는 것은 노동조합의 투쟁력 때문이 아니다. 사회를 바꾸겠다는 거창한 이념도 아니다.

오직 열심히 일했고 삶의 토대로 여겼던 소중한 자신의 일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그리고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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