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정세근<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 승인 2016.02.10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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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학생들에게 표절을 면하는 방법으로 큰따옴표를 강조한다.

남의 글이면 무조건 “ ”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주를 달거나 괄호를 넣어 누구의 어디서를 적으면 그것은 훔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빌리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게다가 남이 빌려 가면 당사자는 영광일 수밖에 없다. 많이 빌려갈수록 학자의 권위는 올라간다.

한동안 혼성모방이라면서 표절을 정당화시키기도 했다. 여러 작품에서 이곳저곳 따라 글을 만드는 것인데, 말이 좋아서 그렇지 기본적으로 그것도 훔치는 것이다. 아무리 이성주의 시대가 가고 탈이성주의 시대가 도래했다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외치더라도 도둑질은 도둑질이다.

한 편의 소설로 갑자기 뜬 박사 작가가 있었다.

유명작가의 평론을 써서 그의 관심을 끌더니 마침내는 그 유명작가가 신문지상에 서평을 넘어서 광고를 해주는 바람에 갑자기 편의점에서도 팔기 시작했다.

휴가철에 꼭 갖고 가라는 당부의 말씀도 있었으니 서평보다는 광고에 가까웠다는 내 말이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소설의 구조가 이탈리아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기호학자의 소설형식과 똑같았다.

내용은 조선시대지만 형식은 중세였다. 살인사건의 해결도 마찬가지의 전개방식이었다.

그런데 그 작가가 표절의 혐의에 걸리지 않은 것은, 이 작품 말고 다른 것으로 시끄러운 적도 있었지만, 책 뒤에 이탈리아 작가 소설의 구조를 빌려왔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른바 시인성 발언을 뒤에 붙였기에 큰 탈이 없이 넘어갔다. 게다가 박사의 잘난 논리로 혼성모방이라고 주장하니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서양논문에는 이런 시인(是認)의 관습이 있다.

한마디로 ‘탱큐라고 말하는 좋은 버릇’인데, 영어로는 ‘앎을 얻었음’(acknowledgement)이라고 한다.

본디 ‘누구한테 알았음을 드러낸다’는 뜻인데 인정, 자인, 용인, 승인, 고백, 통지, 및 고맙다는 사의(謝意) 표명으로 번역된다. 여기에 바탕해서 답례하다, 정평있다는 뜻으로까지 확장된다.

그런데 우리 논문에서는 이런 형식이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사실이나 감정을 표현하려고 할 때 어디 두어야 할지 분명하지 않다.

서양논문은 주로 맨 끝 본문 밑에 붙이는 것이 관습적이다.

우리는 감사할 데가 없는가? 우리는 모두 독창적인가? 우리는 고맙다고 말하지 않아야 정말 고맙단 말인가?

아닐 것이다. 우리라고 남의 도움 안 받고 사나? 그것은 살아있는 한 불가능하다. 살아있는 한 남에게 손해를 끼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는 살아있는 한 남에게 도움을 받는다.

나는 내 식대로 ‘고맙습니다’라고 번역해서 논문 뒤에 붙인 적이 있다.

내 나름대로 그 용법을 번역한 것이다. 자백은 너무 강하고, 시인은 아무래도 피동적이고, 그래서 자발적이면서도 유쾌하게 ‘※고맙습니다:…’ 란을 만든 것이다. 구어적 표현으로는 ‘덕분입니다’겠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나는 우리가 모두 민주화 운동을 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는 돈 벌어야 했다. 다만 당시 몸 버리며 열심히 한 친구들에게 고마워하기만 하면 된다. 내가 안 했다고 그릇된 일처럼 말하는 것은 정말 독선(獨善)적인 태도다. 세상일 내가 다 못한다. 다만 남이 해준 일에 감사하면 된다. 실천은 못 할 수 있지만, 감사도 못하는 사람은 바보 중의 바보다.

오늘부터 “ ” 해보자. 오늘부터 ‘고마운 마음’을 뒤에 붙여보자.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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