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의 무법자 칡
들판의 무법자 칡
  • 우래제 교사<청주 원봉중학교>
  • 승인 2016.02.1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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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 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이런들 엇더하료 져런들 엇더하료,/ 만수산(萬壽山) 드렁츩이 얼거진들 엇더하리,/ 우리도 이같이 얼거져 백년(百年)까지 누리리라.” 고려 말 이방원이 정몽주를 회유하고자 지었다는 하여가이다. 작가 이방원의 눈에는 만수산 드렁칡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칡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칡은 여러해살이로 줄기가 매년 굵어지기 때문에 나무로 분류되기도 하는 덩굴 식물이다. 칡은 예전부터 구황작물로 이용되었다. 굵은 뿌리에서 얻은 녹말은 갈분(葛粉)이라 하며 녹두가루와 섞어서 갈분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하였고 요즘은 칡 냉면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그리고 갈근탕, 갈분, 칡차를 만들어 각종 약에 이용하기도 하였다.

요즘은 숙취해소, 갱년기 여성에 좋다고 칡즙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예전에는 칡의 긴 줄기를 잘라 가마솥에 삶은 다음, 흐르는 물에 담가 두었다가 껍질을 벗겨 내 얻은 것이 갈포인데 섬유로 이용하기도 하고 갈포벽지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칡의 잎은 소나 토끼의 좋은 먹이로 이용되었다.

이렇게 유용한 자원이 왕성한 생활력과 번식력 때문에 지금은 골칫거리로 여겨진다. 칡은 추위에도 강하고 산기슭의 양지에서 잘 자라며 줄기가 수십 미터 이상 뻗어나간다. 이런 성질 탓에 사람들이 밭으로 사용하다 묵는 곳에 여지없이 칡이 번성한다. 또 빛을 좋아해 주변의 식물을 감아 올라가 빛을 독점하기 때문에 다른 식물이 자라기 어렵다. 결국 칡이 자리 잡으면 다른 식물과 어울려 살 수 없다. 칡만 번성할 뿐이다. 또 땅에 닿는 곳마다 뿌리를 내려 줄기를 자른다고 칡이 제거되지 않는다. 뿌리 내린 곳마다 캐내어야 제대로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칡을 이렇게 골치 아픈 식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인간이다. 칡은 자연이 잘 보존된 자연림 생태계에는 살 수 없다. 발아부터 살아가는 동안 빛이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칡은 사람이 새로 만든 조림지나 산불 난 곳, 벌채한 곳, 무덤을 만들어 놓은 곳처럼 인간에 의해 파괴되어 빛이 잘 들어오는 곳에서만 산다. 결국 칡이 번성한다는 것은 사람이 칡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결과인 것이다. 칡이 생태계에서 마냥 무법자인 것은 아니다. 다른 식물이 없는 경작지와 산림의 주변에 번성하면서 흙이 떠내려가는 것을 막아주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진 도로 절개지에서 자라면서 흙이 침식되고 붕괴하는 것을 막아 주는 유용한 군락자원이기도 하다.

부모님이 부치던 논밭을 다 관리할 수 없어 몇 해 방치를 했더니 칡밭이 되어 버렸다.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님이 피땀으로 일군 논밭을 더는 방치할 수 없어 두릅나무라도 심을 요량으로 묵은 밭을 정리하기로 하였다. 칡이 더 굵어지면 그만큼 더 힘들어지기에 마음만 바쁘다. 그나마 따뜻한 겨울 덕에 땅이 얼지 않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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