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宗婦)
종부(宗婦)
  • 심억수<시인>
  • 승인 2016.02.04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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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심억수

설이 다가오자 아내가 무척 예민해진 것 같다. 아내는 종갓집 맏며느리다. 6대 종부(宗婦)의 삶이 그리 녹록하지 않을 것이다.

설날 대가족이 모여 차례 지낼 준비를 해야 하니 경제적인 부담과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잘하든 못하든 집안의 대소사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나는 전통적 가풍을 이어가는 종손으로 태어났다. 순종을 미덕으로 여필종부하신 어머님을 보고 자랐다. 그래서 아내가 종부의 소임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집안의 대소사는 아내의 몫으로 알았다. 집안에 일이 생기면 나는 아내에게 슬쩍 떠밀어 주고 당신이 알아서 해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내의 눈치를 보게 된다.

옛날이야 늘 많은 가족끼리 부대끼며 함께 생활했기 때문에 명절이라고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핵가족으로 단출하게 지낸다. 맞벌이 시대다. 대부분 여자도 사회 활동을 한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바쁜 생활을 한다. 그러다 보니 명절이 집안 친척들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되었다. 명절날 갑자기 많은 친지가 모인다. 그러니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아내만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남자도 명절증후군을 않는다. 아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내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숙부와 동생들의 화합을 위하여 애써야 한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어머님 혼자 계시니 서운하지 않게 해드려야 한다. 조카들에게 살가운 덕담을 줘야 한다. 6대 종손으로서 품위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아내는 나에게 당신은 걱정이 없는 사람이란다.

TV를 보니 주말이면 차가 꼬리를 물고 고속도로를 가득 채우고 있다. 올해도 귀향길은 순조롭지 못할 것 같다. 멀리 사는 동생과 숙부 그리고 조카들이 먼 길 오기에 고생을 많이 할 것 같다. 나는 아내에게 먼데 사는 숙부와 동생들이 고생되니 오지 말라고 전화하자고 하였다. 그리고 청주에 있는 가족끼리 차례를 지내자고 하였다. 아내는 안색이 변하며 명절이 아니면 언제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겠느냐며 괜한 소리 하지 말란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집안 대청소나 하란다. 한편으로는 머쓱하고 미안하고 또한 고맙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명절이면 스키장이나 온천을 찾거나 아니면 국외여행을 즐기면서 여행지에서 간단히 차례를 지낸다는 말도 들린다. 점점 명절의 의미가 축소되고 연례행사의 방편으로 변하여 간다. 그러나 우리 집안은 어림없는 일이다. 종가이기에 가풍을 따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세배가 끝나면 동생과 아들은 빨리 처가로 갈 궁리를 할 것이다. 아내도 친정에 가고 싶을 것이다. 아내는 차례에 참석한 친지들의 뒤처리를 해야 한다. 친정에 갈 시간이 없다. 이제는 장모님도 돌아가셨다. 친정 큰오빠에게 가야 한다. 장모님 살아 계실 때 친정 식구들과 자리하도록 배려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아내는 종부이다. 설이 다가오면 차례에 필요한 음식 준비를 하여야 한다. 차례 후 뒤처리의 정신적·육체적 부담 때문인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심리적 부담감과 피로감으로 명절 증후군을 앓는다. 올해도 아내의 신경이 예민하다. 이번 설엔 아내와 함께 장인 장모님 산소를 찾아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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