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다가오는데
설이 다가오는데
  • 김태종<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 승인 2016.02.0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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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김태종<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설이 다가옵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설이지만 이번 설은 또 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다가오는 설을 내다봅니다.

살아온 나날이 이제는 제법 만만치 않으니 설에 대한 기억들도 그만큼 쌓이고 또 쌓여 켜를 이루면서 퇴적암의 단면처럼 무늬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 설에 대한 특별하거나 좋은 경험들은 가지고 있지를 못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돈을 갖는 것이 별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던 내 부모님은 세뱃돈을 넉넉히 주시는 것도 아니었고, 설에 먹는 음식이 밥보다 못했던 내 입맛, 그리고 새 옷에 대한 아무런 욕심이 없었으니 설빔이라는 것도 탐탁잖았고, 설이면 으레 오고 가는 손님들도 오고 갈 친척이 별로 없는 우리 집에는 남의 이야기였으니 설이라고 하는 명절은 그저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 다른 것이라고는 없었습니다.

막 철이 들기 시작할 무렵 양력설을 강제하던 정부 때문에 신정과 구정이라고 하는 묘한 정서적 틈이 생기던 일, 이중과세를 하지 말라는 그 정부의 방침으로 설에도 학교에 가야 했던 일, 이후 아직도 많은 이들이 설을 구정이라고 부르는 것을 거슬리게 듣게 된 것들이 떠오릅니다.

그런 내게 있어 설이라고 하는 날은 한 살 더 먹게 된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는 것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한 살 더 먹으니 나잇값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작은 다짐들을 했던, 설을 앞두고는 설 다음에 펼쳐질 나날들에 은근한 기대를 하고는 있었다는 것은 돌아보면 의미가 있었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러던 내게 설이 특별한 날로 기억되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안처럼 번성하지 않은 집안 출신인 후배와 형·아우로 지내게 되면서 명절이면 서로 오가면서 친형제 못지않은 정을 나누게 된 일이 생긴 겁니다. 그 아우가 창원에 살았으므로 한 번은 아우가 청주로 오고, 한 번은 내가 창원으로 가는 식으로 다니면서 명절을 보냈는데, 그 아우가 자신의 길이 따로 있다고 하면서 터키로 떠난 다음 다시 혼자 보내는 명절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아우가 아프리카의 한 지역에 가서 선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자라서 출가를 한 아이들과, 그 사이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다는 딸 하나까지 생겨 세 딸과 사위 셋이 명절이면 오고 가면서 혼자 보내는 명절은 이제 끝이 났는가 싶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명절이 다가온다는 것이 그냥 안타깝기만 합니다. 전과는 달리 추위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 다가오는 설이 슬픔이고 분노이고 고통일 수밖에 없는 이들이 있는 까닭입니다. 그들이 이번 설을 따스하고 포근하게 보내기는 아예 글러 버린 듯합니다. 오늘 밖에 나가 이런저런 볼일들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그 현장을 잠시 들렀는데, 뭐라고 할 인사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명절이면 이런 이들을 기억하면서 그들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보내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프거나 슬픈 이들에게 명절은 그것이 다가오는 것 자체가 또 그대로 비극일 수 있다는 것, 사람과 사람이 정을 쌓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의 의미, 인도적 차원에서 다른 이들을 바라볼 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그런 명절, 나는 이번에 다가오는 설이 그런 명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지는 해를 바라봅니다.

‘그래,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래서 바람 시려도 가슴은 따스할 수 있는 그런 명절 말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 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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