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과 설맞이
입춘과 설맞이
  • 김기원<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6.02.03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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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어느새 입춘입니다.

입춘은 봄이 시작되는 날이 아니라 봄이 오고 있으니 봄맞이 준비를 잘하라는 날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직도 동장군의 맹위가 여전한 겨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봄은 멀지 않았습니다. 비록 땅거죽은 얼어 있으나 땅속 깊은 곳에서는 언 땅을 녹이고 새싹을 돋게 하는 봄의 예열이 한창입니다.

농경사회에서 씨 뿌리는 봄은 곧 꿈이고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입춘이 오면 조정은 대궐기둥에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시화세풍(時和歲豊)을, 백성은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과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입춘첩(入春帖)을 써 붙였습니다.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안녕을 빌었고, 풍년들기를,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소망했습니다.

하지만 도시적인 삶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봄은 기지개를 켜는 약동의 계절이기는 하나 사계절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설원을 즐기는 사람들은 마냥 겨울이기를 바라고, 바다를 좋아하는 이들은 마냥 여름이기를 바라니까요.

사실 봄여름 가을 겨울 모두가 특색 있고 의미 있는 계절입니다.

사계절이 있어 산천은 철 따라 아름답고 사람들은 취미와 적성에 따라 자신을 연출하며 살아갑니다. 변화와 적응이라는 축복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거죠.

그러므로 사계의 변화를 즐기고, 사계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새기며 사는 이는 정녕 행복한 사람입니다.

며칠 후면 설입니다.

설은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 최대명절로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웃어른들께 세배하고, 떡국을 먹고, 누구나 공평하게 나이 한 살을 더 먹는 날입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까치 설이라고 불리는 그믐날 밤에 잠이 들면 눈썹이 희어진다 하여, 방과 마루에 등불을 밝히고 밤을 하얗게 새우기도 했습니다.

새해의 첫날인 설은 이렇게 지새우면서 맞았습니다. 그믐날에도 세배했습니다. 묵은세배라고 하여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뜻을 새긴 세배였습니다. 과거에 대한 감사와 앞날에 대한 희망을 상징하던 의례였죠. 정초엔 만나는 친구나 친척들에게 서로 축복하는 덕담을 했습니다. 그런 덕담을 주고받는 미풍은 사라지고, 자본주의 아니랄까 봐 세뱃돈 주고받는 세배문화는 오히려 심화하였습니다.

어른을 공경하는 세배가 아니라 세뱃돈한테 절하는 야릇한 세태입니다. 설날놀이로 여자들의 널뛰기와 남녀노소가 함께 즐기는 윷놀이가 있는데, 널뛰기는 민속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이 된 지 오래 이고, 윷놀이마저 컴퓨터게임에 밀려 시들해지고 있습니다.

아무튼 설날은 아이들은 즐겁고 어른들은 부담스러운 날입니다.

아이들은 설빔도 받고 세뱃돈도 받고 나이도 먹으니 신나고 좋지만, 어른들은 설빔해줘야 하고 세뱃돈도 마련해야 하니 고달프기 그지없습니다. 게다가 먹기 싫은 나이까지 애써 먹어야 하니 서글퍼집니다.

모처럼 만에 처자식을 데리고 온 아들 녀석은 차례 지내기 무섭게 처가로 줄행랑칠 것이고, 아내는 명절증후군으로 몸살이 날 것입니다.

60대 초로가 이럴 진데 노년의 설날은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입춘을 지나서 맞이하는 이번 설 명절은 대체 휴일까지 있어 그야말로 황금연휴를 맞습니다.

경기가 어렵다고 하는데도 많은 사람이 국외로 유명관광지로 빠져나갈 것입니다. 어찌 되었던 연휴를 즐기고 보자는 사람들의 행렬을 탓할 순 없습니다.

딴은 참 좋은 세상입니다.

마음속에 봄이 꿈틀거려야 진정한 입춘이듯, 늘어나는 나이테만큼이나 삶의 내공이 쌓여야 진정한 설맞이입니다.

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듯이,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꿈과 희망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쪼록 입춘대길하시고 건양다경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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