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을 아시나요
수요일을 아시나요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6.02.0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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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장미꽃이 아름다운 건 꺾여도 꽃 모양을 오래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봄이 되면 강산에 흐드러질 진달래가 뿌리로부터 이어진 제 몸에서 쫓겨난 서러움에 이내 시들어버리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 있지요.

수요일입니다.

꽤 오랜 세월동안 충청타임즈에 글을 쓰면서 금요일과 월요일을 오르내리다가 이제 매주 수요일로 자리를 옮기게 됐습니다.

그런 흐름에서 떠오른 수요일에 대한 생각에 맨 먼저 노래 <비 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 떠오르는 애틋함입니다.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그대에게 안겨 주고파/ 흰옷을 입은 천사와 같이/ 아름다운 그대에게(중략) 비 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라는 가사로 이어지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이, 수요일은 가지가 잘린 진달래와 같은 서러움입니다.

수요일은 역사입니다.

어김없이, 오늘 정오에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제1216차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정기 수요집회’가 열리겠지요.

전라도에서 끌려온 명자 언니 죽을 때/ 삼단 같은 머릿단 잘라내어 보에 싸서/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언니들 따라 부른 노래 반 울음 반/ 누군가는 살아서 이 머리칼 울 엄니께 건네주오 <도종환. 조센 데이신타이(조선 정신대), 부분> 시인의 깊은 탄식처럼 처절한 아픔이, 꽃 꺾여 참혹한 할머니들의 한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는, 수요일은 우리가 두 눈 부릅뜨고 생생하게 기억해야 할 아픔의 상징입니다.

올 4월에는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습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수요일이 역사가 되는 일은 백성의 뜻이 나타나고 갈라지는 또 다른 까닭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임기 만료일 전 50일 이후 첫 번째 수요일이 운명의 날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임기 만료일 전 70일 이후 첫 번째 수요일 날 결정되고, 도지사와 시장·군수·구청장을 비롯해 광역 및 기초 지방의회의 풀뿌리 민주주의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일 역시 임기 만료 전 30일 이후 첫 번째 수요일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도 윤년이 되는 해 11월 두 번째 수요일에 시행되니, 수요일은 이래저래 민주주의와 백성, 그리고 나라와 개인의 삶에 대한 가치를 가늠하는 역사적 중요성이 아로새겨질 날입니다.

해와 달, 불과 물, 나무와 쇠, 그리고 흙으로 이름 지어진 일주일 7일이 두루 소중하지만 반성과 위안, 그리고 선택에 따른 결정의 순간순간이 두루 담겨 있는 수요일은 그래서 더욱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늘의 별 가운데 수성(水星 Marcury)과 북유럽 신들의 아버지이며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 역할을 맡는 오딘(Wodin), 그리고 음양오행에서 물을 상징하는 수요일은 아름다움입니다.

언 강이 서서히 몸을 풀면서 커지는 물소리와 같이, 그리고 흔적없이 흐르다가 사람과 그릇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세모, 네모, 동그라미의 모양을 만드는 물처럼 맑고 유연한 하루하루가 되기를 수요일의 유별난 의미를 담아 기원합니다.

‘시린 그대 눈물 씻어 주고픈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무거운 코트 깃을 올려세우며 비 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노래하며 오늘 저녁 꽃집 앞을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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