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예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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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임즈 포럼
  • 승인 2016.02.0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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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타임즈 포럼

유난히 메모하는 것을 즐기는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 워낙 많은 수술을 받고 약을 먹어야 했던 시간을 보내면서 기억력이 매우 나빠졌다. 그래서 적어두지 않으면 금세 대화나 안내받은 내용을 잊어버린다. 메모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열의를 보이듯이 침대 위엔 작은 스프링 메모장 서너 개가 있다. 소소한 일과를 적는 메모장과 정신보건 센터나 복지관의 복지사와 상담한 내용을 적어놓은 메모장, 주민 센터 복지 담당자와 나눈 여러 가지 정보를 적은 메모장 등, 항상 메모장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

그녀의 병명은 뇌병변장애와 뇌전증(간질), 간헐적 분열이다. 다른 복지사가 그녀를 찾아가 상담했었는데 지금은 내가 맡는다. 그녀의 11평 영구임대 아파트에 들어서니 반가운 미소와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이 얼굴에 환하게 보인다. 이런 내담자를 만나면 기분이 좋다. 설레게 하는 마음의 등이 켜졌다는 것만으로도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짧은 커트 머리의 그녀를 그렇게 처음 만났다.

다섯 살 때, 큰 교통사고를 당한 뒤로 몇 번의 수술을 했다. 현재는 몸이 불편한 그녀를 위해 장애인 활동 도우미가 주 3회, 청소를 비롯한 소소한 집안일을 돕고 있다. 몸의 질병은 마음의 질병까지 부르게 되곤 한다. 그녀 역시 언젠가부터 앓게 된 분열 증세가 있다. 2년 전쯤, 친하게 지내던 동생을 주먹으로 때려 상해를 입혔다. 그것 때문인지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자괴감이 깊다. 기초생활 수급자이지만 복지관에 주 3회 출근해서 반찬을 만들어 배달하고 급여를 받는 장애인 일자리에 참여 중이다. 사실, 지체장애수급자는 일하지 않아도 생계비가 나온다. 그러나 그녀는 일하지 않으면 사람답게 살지 못할 것 같다며 4년째 성실히 해내고 있다. 나는 만날 때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열심히 살아내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녀는 엄마를 매우 사랑한다. 교통사고가 난 뒤, 논밭을 팔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살려 낸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만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왼쪽 몸을 쓰지 못한 채, 한글을 어깨너머로 배우고 학교에 가방만 메고 다녀 간신히 고졸이 되었다. 변변한 일자리 없이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갖게 해 준 신도 엄마도 세상도 싫다고 한다. 그러나 또,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얼마나 이 땅에서 자신의 몫을 다 하며 살고 싶어 하는지를. 칠순이 넘은 엄마의 안부 전화가 뜸할 때는 안절부절못한다. 그래도 먼저 전화해서 안부를 묻기는 싫다 한다. 영락없는 응석받이 아이의 모습이다. 어쩌면 이런 뜬금없는 자존심이 그녀의 실존을 증명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만나는 일이 즐겁다. 일주일 동안 있었던 고민과 함께 그녀의 삶 의지를 들여다보는 일은 나를 설레게 한다. 소소한 즐거움과 특별한 일들을 재잘대는 그녀가 사랑스럽다. 제주도에 가서 3년만 살아보고 싶다는 그녀를 위해 서점에 가서 제주도에 관련된 책을 선물했다. 한 손으로 만들기엔 버거운 떡볶이를 함께 먹고, 자라지 않는 작고 보드라운 그녀의 왼손을 만져주는 게 좋다. 오늘도 나는 당신이 얼마나 훌륭히 살아내고 있는지,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한 사람임을 힘주어 말한다. 그러면 그녀는 하얀 이가 다 보이도록 웃는다. “정말요, 선생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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