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친구들
시 읽는 친구들
  • 유지원<서원보건소 보건행정팀장>
  • 승인 2016.02.0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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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유지원<서원보건소 보건행정팀장>

오전 7시, 오늘도 어김없이 시(詩)가 배달된다. 오늘은 정호승의 ‘수선화에게’라는 시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라는 정호승의 시를 음미하며 내 삶은 그리 외롭지 않다고 나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 나이가 된 지금도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며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고향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위안이 된다. 그동안 간간이 소식은 주고받았지만 고향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10년 전쯤의 일이다. 그동안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며 각자의 일들로 시간을 보내다가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아이들도 장성 하고 보니 다시금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서로 어떻게 사느냐고 묻다가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 고향 친구는 숨길 게 없어서 좋다. 꾸밀 필요도 없다. 민 낯으로 만나도 좋고 알몸을 보여줘도 창피할 게 없어서 더 푸근하다. 마시던 커피를 나눠 먹고 눈치 보지 않고 소리 내어 차를 마셔도 털털한 게 매력이라며 오히려 ‘픽’하고 웃음이 나오게 한다.

친구가 두르고 나온 스카프가 탐이 나서 예쁘다고 하면 스스럼없이 풀러 주는 친구들. 내 곁에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친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산다. 서울과 천안, 그리고 청주에 흩어져 살지만 가까이 있는 것 같고 늘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카톡방이 한몫을 한다. 그곳이 우리 소통의 장이다. 두 달에 한 번 어느 지점에서 만나면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를 서슴없이 풀어놓는다. 우리에겐 함께 했던 추억이 있고, 풍경이 있고, 함께 했던 웃음과 눈물이 있다. 산다는 것은 짧고도 긴 여행이리라. 뒤돌아보았을 때 지우고 싶지 않은 추억을 만들러 우리는 잠시 여행을 떠난다.

세상에서 말하는 친구는 네 가지 유형의 친구가 있다. 첫 번째 친구는 꽃과 같은 친구다. 꽃이 피면 그 아름다움에 선뜻 빠져든다. 그러나 꽃이 지거나 시들게 되면 보잘 것 없듯이 자기 좋을 때만 찾아오는 친구다. 두 번째 친구는 저울과 같은 친구다. 저울은 무게에 따라 한쪽으로 기운다. 그처럼 자신에게 이익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익이 있는 쪽으로 기우는 친구다.

세 번째는 산과 같은 친구다. 산은 많은 새와 짐승들의 안식처다.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어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반겨준다.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마음 든든하다. 네 번째는 땅과 같은 친구다. 땅은 생명을 키우고 곡식을 기르며 어떤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자신을 내어준다.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응원하며 믿어주는 친구다. 아마도 내 친구들은 산과 땅 같은 친구들이 아닐까.

세상을 살다 보면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마음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정작 아프고 상처받은 이야기는 아무한테나 꺼내놓을 수 없다. 친구들과 3박 4일의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더 든든하고 비옥한 땅이 되어 있지 않을까. 풍요 속에서는 친구들이 나를 알게 되고, 역경 속에서는 내가 친구를 알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이만큼 풍요도 역경도 겪었기에 친구들이 더 소중하다.

오래 신은 신발처럼 적당히 나에게 혹은 신발에 길들어 동화된 듯한 그런 친구라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인가. 이제 나이 지천명을 지나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이렇다 할 큰 자랑거리는 없지만 그래도 남부럽지 않은 일 한 가지를 꼽는다면 내 곁에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함께 시를 읽으며 잊었던 감성을 흔들어 깨우기도 하고 추억을 꺼내보며 자지러지게 웃을 줄 아는 친구들. 내일은 또 어떤 시(詩)가 배달될까 보고 싶은 친구만큼이나 시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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