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을 법으로 고양한다고?
애국심을 법으로 고양한다고?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6.01.3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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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공무원들의 애국심이 매우 부족했던 모양이다. 정부가 최근 국가공무원법을 개정하고 책임성·청렴성과 함께 ‘애국심’을 공직가치로 규정했다.

이 법은 ‘모든 공무원은 의무적으로 이 가치를 준수하고 실현해야한다’고 못박고 있다.

각종 공무원시험에서도 애국심이 중요한 평가기준이 될 전망이다. 공직에 애국심을 고취하겠다는 취지를 탓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뜻이 바람직하더라도 추진 방식이 상식을 벗어나면 목적을 의심받기 마련이다.

우선 애국심이라는 것이 법으로 고양될 성질의 덕목이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추상적 개념인 애국심을 어떻게 평가하고 규율하겠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당장 공무원노조가 반발하고 있다. 애국심을 빙자해 정부 정책의 지지 여부를 검증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내놓고 있다. 법이 원하는 애국심이 국가를 향한 것인지, 정부에 대한 것인지 헷갈린다는 얘기다. 양심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애국심만 강조되는 점도 이상하다. 기존의 법은 물론 개정안 입법예고 때만 해도 민주성·도덕성·투명성·공정성·공익성·다양성 등이 포함됐지만 새로 들어간 애국심 등 세 가지만 남기고 모두 배제됐다. 민주, 도덕, 공익, 공정 등은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자 미완의 과제이기도 하다. 돌연 애국이 공직의 최고 가치로 등장한 것도 의아스럽지만 입법 예고까지 했던 다른 덕목들을 굳이 빼버린 의도가 석연찮다. 우리 공직사회에서 도덕성과 공정성 등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올랐다고 판단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민주, 공정, 공익, 도덕 등의 가치가 바로 섰을 때 국민은 국가에 자긍심을 갖게 되고 그 자긍심에서 애국심이 배양된다. 공무원이라고 국민과 다르지는 않을 터이다. 공무원법에서 퇴출된 가치들이야말로 애국심을 길러낼 근간인 것이다. 뿌리와 줄기를 없애고 열매를 기대하는 꼴이다.

물론 국민들이 공직자들의 애국심에 의구심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인사청문회에 등장하는 장관급 이상 공직자의 태반이 병역면제자다. 지난해 국감자료에 따르면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에 근무하는 4급 이상 고위 공직자 가운데 10.3%가 병역을 면제받았다. 10명 중 1명이 넘는 셈이다. 본인 뿐 아니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4급 이상 공직자의 직계 비속 30명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병역을 면제받았다. 말이 면제지 고국을 포기한 행위를 감안하면 기피라고 해야 옳다. 병역 의무는 고위층으로 갈수록 희박해진다. 이번에 애국심을 법정 공직 가치로 밀어붙였다는 황교안 국무총리만 해도 그렇다. 그는 두드러기의 일종인 만성 담마진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징병검사를 받은 365만여 명 가운데 이 질환으로 면제받은 사람은 4명에 불과하다. 당시 질병을 입증할 진료자료가 공개됐지만 90만분의 1이 넘는 희귀성은 적지않은 뒷공론을 낳았다. 애국심을 공무원들이 의무적으로 실천해야 할 직업적 가치로 규정한 이 법을 병역미필자들이 수두룩한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것이 아이러니로 꼽히는 이유이다.

굳이 법을 통해 공직자들의 애국심을 선양하겠다면 병역미필자들을 고위 공직에서 배제하는 법부터 만드는 것이 순서다. 툭하면 터지는 병영사고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기꺼이 나라에 맡기는 서민들이 겪을 박탈감을 덜어주는 성과도 덤으로 따를 것이다. 법을 사람들에게 없던 애국심까지 심어줄 만능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것도 순진하다.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우리의 법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낡아빠진 조어에 희롱당하고 있다. 믿음을 잃고 있다는 얘기다. 힘있는 자와 가진 자에 관대한 비겁한 법을 강자에게 더 엄정한 책임을 묻는 정의로운 법으로 바꾸고 입에 물고 태어나는 숟가락의 재질은 각각이더라도 태생적 불평등을 극복할 기회만큼은 균등하게 주어지는 사회가 되도록 룰을 만들어 갈 때 애국심은 자생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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