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 당첨되다
복권 당첨되다
  • 정명숙<수필가>
  • 승인 2016.01.2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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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정명숙

공짜로 얻은 복권이다.

내 팔자에 횡재수는 없으니 투기는 하지 말라는 점쟁이 말이 생각나 시큰둥하다가 밑져야 본전이지 하며 긁어봤다.

당첨이다. 여기저기서 꽝이네 하는 실망의 소리를 들으면서 민망하게 웃음소리가 나도 모르게 커진다.

가까운 친지가 맛있는 점심을 샀다. 식당 문을 나서는데 행사장에 들렸다가자고 한다. 스텐다라이가 천원이란다.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마음도 내키지 않았으나 모처럼 부탁을 하니 안 갈 수가 없어 따라갔다.

천원 주고 물건만 사가지고 오려던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

나눠준 복권에 당첨되면 피자 팬을 준다고 했다. 헌데 바로 주는 게 아니라 복권 뒷면에 찾아갈 날짜와 시간을 적어주며 그 시간이 지나면 안 준다고 한다. 기분이 묘했다.

그곳에만 갔다가 오면 생기가 넘치셨다. 행사장이라고 했다.

관계자들이 자식들보다 더 위해 주는 것도 좋고 프로그램이 다양해서 즐겁고 신이 나신다고 했다.

한나절을 놀다 돌아올 때는 어김없이 선물까지 주니 행사장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먼 거리다 싶어도 찾아가시고는 했다.

날이 갈수록 쌓여가는 물건도 많아졌다.

화장지, 마른미역과 설탕, 세제나 섬유유연제도 있고 계란도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신문지로 덮어놓은 비밀스런 상자도 개수를 늘여갔다. 공짜로 얻어오는 물건도 있지만 사오지 말라는 식구들의 만류에도 몰래 사들이는 물건도 많았다.

시어머니는 내게 전리품 같은 물건들을 골고루 나눠주셨다.

생활필수품은 대게 질이 떨어지는 상품들이어서 어느 것은 그냥 소비하고 어느 것은 버리기도 하지만 전기를 연결해 쓰는 찌개 냄비나 다리미 등은 몇 번 쓰지도 않았는데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이젠 내 차례인가 보다.

지정해준 날이 되자 갈까 말까 하는 갈등이 생겼다. 그래도 팔자에 없는 복권이 당첨되었는데 피자 팬은 받아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주뼛거리며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행사장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이 줄을 서고 있다. 모두 나이 든 여자들이다.

복권을 확인하고 강당으로 들여보낸다.

회사에 대한 설명을 다 들었다는 확인표를 받아와야 상품을 준단다. 점심 약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난감했다.

다행히 첫날이라 설명이 짧았다며 40분 만에 피자 팬과 함께 출석 표와 내일 참석하는 사람에게 주는 상품권을 준다.

나오는 할머니마다 피자 팬이라 쓰인 상자를 들고 있다. 십여 년 전 시어머니가 화장지를 들고 가는 모습으로 내가 있다. 출석표와 내일의 상품권을 찢어 휴지통에 던졌다.

점심식사 중에 행사장 다녀온 얘기를 했다. 앞에 앉은 지인께서 한 말씀 하신다.

“나는 사과 한 상자에 천 원 한다고 해서 갔다가 천만 원 썼어, 그것도 물건이 좋은 것 같아서 용돈 잘 주는 애들 생각나 사다주면 좋은 소리도 못 듣고 반품을 많이 했어도 그 정도야. 나는 나이가 많아 판단력이 흐려져 그랬다 쳐도 아직 그런데 출입하기는 좀 이르지 않은가.”

동지를 만난 듯 지인의 눈빛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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