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성터에서 느끼는 조상의 지혜와 감동 `덕주산성'
옛 성터에서 느끼는 조상의 지혜와 감동 `덕주산성'
  • 김명철<청주 서경중학교 교감>
  • 승인 2016.01.2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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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 김명철

고갯길은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켜온 중요한 분기점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고개는 단순히 사람과 물자의 수송로 기능만 했던 길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문화와 문화가 만나는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아울러 수많은 사연을 품은 나그네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거친 숨을 고르던 곳이었다. 그래서 고갯길은 걸어가야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월악산은 산세가 험해 예로부터 피난처인 동시에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이었고 고갯길이었다. 명성황후가 월악산 삼봉 아래 별궁 터를 잡은 것도 이런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명성황후가 잔악 무도한 왜인들에 의해 시해된 후 공사도 중단되었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에는 이곳에 한송초·중학교가 들어서 있고 운동장 한켠에는 그때 다듬어 놓았던 주춧돌만 남아 있다. 신라의 마지막 공주인 덕주공주가 마의태자 일행과 함께 덕주사를 창건하고 계곡 이름을 덕주골이라고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이곳 덕주골 월악산 국립공원에는 덕주산성이 있다. 새재와 비슷하면서도 새재보다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충청북도 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덕주산성은 고구려와 신라가 치열하게 다투던 삼국시대에 축조된 후 계속 보수되어 오다가 고려시대에 몽고의 침입 때 충주사람들이 피난하였던 곳이다.

덕주산성의 성문 모양은 무지개 모양의 홍예를 이루며 좌우의 홍예돌이 만나는 곳인 마루 돌에는 태극모양이 조각되어 있어 눈여겨 볼만하다. 북문은 송계마을에, 남문은 망폭대 건너편에, 동문은 덕주사 오르는 길에 있다. 새재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성이다. 이 산성은 계립령을 지키는 군사요충지로 월악산 계곡을 막기 위해 쌓여진 관문의 성격을 띤 성이다. 일반적인 산성이 산봉우리에 축조된 것과는 다르게 계곡을 가로막고 그 외는 험준한 산 능선과 암벽을 이용하여 성을 만들었다.

송계계곡으로 들어서면 높은 산마루의 월악산 영봉에 눈길이 머물게 된다. 영봉과 이어지는 능선만 보고 가면 성문을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도 성문 쪽으로 뻗어 내린 성벽과 수려한 자태의 성문이 월악의 산수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성문 옆의 바위를 따라 능청스럽게 쌓아간 성을 보고 있노라면 돌로 만들어진 성곽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리 높지도 않게 쌓여진 성벽은 시골 담장 같으면서도 자연암벽 위에 높직하니 자리하고 있어 외부의 적이 결코 쉽게 다가올 수 없는 위엄 또한 보여준다. 성벽을 따라 오르다 보면 바위 위를 슬쩍 걸터앉아 넘어가는 우리나라 성이 주는 맛과 문화의 깊이까지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덕주산성이다.

덕주산성은 구조도 독특하고 겹겹이 쌓은 보기 드문 성이다. 험준한 월악산의 지형을 잘 이용하여 쌓았기 때문에 전략적인 가치도 높다. 그러나 무엇보다 망국의 설움을 간직한 덕주공주와 마의태자의 애틋한 형제애와 몽고 침략을 물리친 조상의 애국심을 마음껏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얀 눈이 내린 옛 성터를 걸으면 조상의 지혜와 감동적인 스토리가 우리를 반긴다. 그리고 수많은 꽃과 나무들, 풀과 새들의 소리에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하루가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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