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숲에 가보셨나요
겨울숲에 가보셨나요
  • 안상숙<진천자연휴양림 숲해설가>
  • 승인 2016.01.26 20: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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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안상숙<진천자연휴양림 숲해설가>

숲의 친구들은 모두 겨울잠에 들어 씨앗이 꿈을 꾸는 시간. 세상에 한 번도 돋아나 본 적은 없지만 씨앗은 이미 봄을 알고 있어요. 이렇게 추운 뒤에라야 봄이라는 걸. 그래서 씨앗은 투덜대지 않고 봄을 기다려요.

그러나 씨앗과는 달리 양지 바른 곳에는 여전히 잎들이 자라고 있어요. 자라고 있다는 말은 조금 틀렸어요. 자라는 게 아니고 살고 있어요.

키를 키웠다가는 차가운 바람에 꺾일 게 분명하니 그들은 줄기 없이 뿌리에서 바로 잎을 틔우지요. 잎들도 서로 햇볕을 막지 않도록 겹치지 않게 피어요. 그 모습이 마치 장미꽃이 활짝 핀 모습 같다고 로제트식물이라 해요. 꽃다지며 개망초, 서양민들레, 지칭개, 뽀리뱅이, 냉이….

왜 하필 이런 추운 날에 잎을 틔우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들은 스스로 겨울을 선택한 거예요. 물론 따뜻한 봄날 싹 틔우고 꽃피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겠지만 그때는 자기 삶에 집중하기가 너무 어렵대요. 다른 키 큰 것들과 햇빛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꽃 피우고 씨 맺는 데 쓸 힘이 부족하지요. 큰 나무와 풀들이 모두 겨울잠에 들어간 지금이야말로 작은 풀들에게는 오히려 삶의 기회예요. 혹독한 추위야 극복하면 그뿐이구요.

추위랑 싸워 이기냐구요? 아니요. 아니에요. 이들은 함부로 바람과 추위에 맞서지 않아요. 로제트 식물들은 자연을 거스르느라 힘을 빼지 않아요. 자연은 거스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배우지 않았지만 진작 알아요.

그것은 오래전부터 유전자에 각인된 정보예요. 싸우지 마라, 맞서지 마라…. 싸움에서 이긴들 남는 영광이 없어요. 단지 공멸할 뿐. 그러니 애초 이기기를 바라지도 않지요.

싸워보지도 않고 두려움에 떨며 처음부터 납작 엎드려 있는 모습이 비굴해보이나요? 그러나 때로는 굴종도 전략임을 로제트식물들이 말해주는 것 같지는 않나요?

두려움은 부끄러운 게 아니잖아요. 두려움은 겸손을 알게 해주지요. 사실 사람들은 문명이나 과학을 믿고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잊어버린 듯도 해요. 그래서 자꾸 자연과 맞서 싸우려고 하잖아요.

로제트식물들은 싸우지 않고도 추위에 훼손되지 않는 법들을 찾아냈지요. 털옷을 입거나 땅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거나 잎들을 겹치지 않게 펼쳐 햇볕을 잔뜩 받거나 잎 속의 양분을 당으로 바꾸어 어는점을 낮추거나.

로제트식물들은 정말 꾀 내고 힘내서 엄청 열심히 살아요. 그러나 남들과 경쟁하거나 싸우는 데에 힘을 쓰지는 않아요. 그들은 단지 자기 삶에 집중하여 자기 삶을 사는 일에 열심인 거지요. 그렇게 살아내서 겨울 숲을 완성하고 맨 처음 봄을 시작하는 영광을 갖게 되는 거지요.

그러니 추위와 싸워서 이긴다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에요. 싸우지 않고도 스스로를 지켜내어 결국은 이기는 삶을 사는 거지요.

겨울이라는 말은 겻다라는 말에서 나온 말이래요. 겻다는 머물다라는 뜻이 있는데 집에 있는 사람을 겨집, 계집이라 하잖아요. 안녕히 계세요. 할 때도 그 말이 보이지요. 그러니 겨울은 집에 머무는 그런 계절이라는 뜻이겠지요. 새들도 벌레들도 나무들도 모두 집에 머물러 추위를 피하고 봄을 기다리는 계절. 씨앗이 꿈을 꾸는 고요의 시간.

유독 로제트식물, 세상에서 가장 키 작은 꼬마 풀들이 머물지 않고 여전히 살아내는 겨울 숲. 한뎃잠 자는 그들의 힘 <겨울> 겨울나기와 그럼에도 기어이 불러올 정 <겨울> 봄날을 기다리며 겨울 숲을 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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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여행자 2016-02-07 11:29:13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