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심(丹心)
단심(丹心)
  • 이은희<수필가>
  • 승인 2016.01.2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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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은희

생애 처음 받아 본 통 큰 선물이다. 자동차에서 내리는 덩치 큰 항아리를 보고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은사님은 제자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홍시를 여남은 개가 아닌 일 미터 남짓한 배불뚝이 항아리 통째로 보낸 것이다. 뚜껑을 여니 홍시 빛깔이 주홍빛 노을처럼 부드럽고 곱다. 한 점 티 없이 붉고 부드러운 것이 그분의 성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제자에게 무한정 베풀며 어떤 일이든 열정을 다하는 분이다.

홍시가 가득 담긴 항아리를 보며 단심(丹心)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처음 맺은 인연과 마음이 변하지 않고 살고지고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인연이 부부든 타인이든 사람의 관계란 가까울수록 흉허물이 보이고, 단점이 드러나면 그 사람에게 느꼈던 좋은 감정도 퇴색하기 마련이다. 그 인연의 끈을 변함없이 이어가고자 이해와 배려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단심은 감나무밭에도 있다. 일손을 도우러 간 그날, 감나무의 전 생애가 나에게 떨림으로 다가왔다. 먹감을 따며 일편단심으로 마감하는 나무가 바로 감나무라는 걸, 단풍이 감밭에서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된다. 일본의 선승이자 시인인 료칸 선사는 임종에 이르러 “겉도 보이고 속도 보이며 떨어지는 단풍이여”라고 자신의 전 존재를 규명하는 하이쿠를 남겼다. “무엇을 보느냐,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며, 어떤 대상이든 제대로 보고 느끼라는 소리다.

감나무는 한 몸으로 피고 진다. 여름날엔 잎과 열매가 푸른 빛깔로, 가을엔 붉은 잎과 열매로 수확기에 접어든다. 바람결에 감잎이 우수수 낙엽으로 스러져도, 눈먼 까치를 구제하고자 붉은 감으로 공중에 현현하게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바치는 정성스러운 마음, 바로 단심(丹心)이 아닐까 싶다. 홍시가 손안에 들거나 목구멍으로 넘길 때 작은 의식이라도 치러야 할 것만 같다.

그날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녹봉인양 먹감 한 상자를 이고 돌아온다. 작은 장독 두 개를 사와 지푸라기를 켜켜이 깔고 감을 정성스레 안친다. 뇌리엔 벌써 무르익은 붉은 홍시를 백자 도자기에 한 알씩 꺼내는 윤곽이 눈앞에 선하다. 감 꼭지를 떼고 칼로 두 등분하여 노란 심지를 발라낸다. 이어 입안에 시원 달콤한 홍시가 살살 녹아들며 감탄사 연발하는 내 모습.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고 사라졌던 입맛이 돌아온다. 그러나 상상일 뿐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홍시의 맑은 빛깔은 어디 가고 푹 물러 거무튀튀한 것이 보기만 해도 식감이 떨어진다. 맛 또한 이상하다. 올해 홍시 만들기는 실패다.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고 깨우치라는 소리인가 보다.

단심이 부족한 탓이다. 감 선정과 통기성 좋은 장독 고르기, 날씨도 한몫하는 등 홍시로 무르익을 때까지 세심히 살필 것들이 많다. 은사님께서 장독째 홍시를 보낸 걸 보니 아마도 짐작하셨던 것은 아닐까. 거저먹기에 염치가 없지만, 장독만 봐도 흐뭇하고 든든하다. 동장군이 납신 날, 야밤에 출출하여 항아리에서 살 언 홍시를 꺼낸다. 홍시에서 은사님의 정성이 느껴져 찬 것을 먹어도 훈훈한 겨울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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