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
복면가왕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6.01.2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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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 강대헌

파리 잡는 파리넬리, 나를 따르라 김장군,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소녀의 순정 코스모스, 여전사 캣츠걸, 꺼진 불도 다시 보자 119, 오빠 달려 빠라바라바라밤, 레인보우 로망스, 상감마마 납시오, 자유로 여신상, 명랑시인 김삿갓, 내 귀에 캔디, 감성보컬 귀뚜라미….

마스크를 쓰고 정체를 공개하지 않은 채 무대에서 노래 실력을 뽐낸다는 어느 지상파 TV의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등장한 이름들입니다.

복면들의 이름만 들어도 말의 조합이 재밌기도 하고, 때론 사회적으로 미묘한 함의(含意)까지도 담겨져 있는 듯 하더군요.

때아닌 복면이란 콘셉트가 기발하기도 했지만 불쑥 낯빛을 가린 모습을 대면한다는 입장에선 꺼림칙한 측면도 있긴 했습니다.

처음엔 뭐 이런 프로그램이 다 있나, 가수들 노래 부를 때 답답하게 얼굴까지 가려놓고 무슨 생쇼를 하는 건가하는 식의 불쾌한 의구심이 생겨 보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클레오파트라가 어쩌고저쩌고하는 얘기를 듣게 되었죠. 클레오파트라도 그냥 클레오파트라가 아니라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이더군요.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의 복면이 벗겨졌을 때 저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가수 김연우였습니다. 그는 아마도 이 프로그램이 낳은 최대의 수혜자일 겁니다.

‘나는 가수다’ 때와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은 김연우의 진면목(眞面目)이라 할 수 있는 가창력과 목소리에 모든 것이 집중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몰래 담벼락을 타는 도둑고양이의 발걸음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사방이 침묵으로 고요할 때, 불 꺼진 캄캄한 방에서 홀로 음악을 들을 때의 기분이랄까요.

클레오파트라 복면을 쓴 김연우의 목소리는 수액(樹液)이 올라오는 것처럼 하나도 남김없이 제 귀를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았습니다.

가수 현진영 또한 이 프로그램이 축복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간 무(無)지션인 줄 알았던 제가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한 번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벅찬 마음이었다”라는 말로 뮤지션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살려준 벅찬 고마움을 드러내기도 했으니까요.

복면가왕 의 특징을 나름 몇 가지로 정리를 해 봤습니다.

먼저는 큰 틀에서의 차별화 전략입니다. 나는 가수다와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와는 다른 접근을 했다는 겁니다.

다음으로는 각론으로 들어가서 봤을 때 복면의 용도를 확장시켰다는 효과입니다. 프로레슬링의 링이나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무도회(UN BALLO IN MASCHERA)에만 복면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등장하는 가수의 얼굴을 가려 신비감을 유발해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가수의 목소리에만 집중하게 하는 탄력성으로 진검승부를 벌이게 하는 복면가왕 을 통해 반성하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동안 가수의 외모가 노래에 대한 반응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게 컸다는 겁니다. 본질에서 벗어난 일종의 외모지상주의 같은 거죠.

저 같은 사람도 만약 가수라면 복면을 쓰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제 얼굴 하나 가려서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올 수만 있다면 그깟 답답함 정도야 기꺼이 참아낼 수 있으니까요.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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