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소본능(1)
귀소본능(1)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6.01.2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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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반영호

누렁이가 새끼 세 마리를 낳았습니다.

아비를 닮은 흰둥이 두 마리에 저를 닮은 누렁이 한 마리인데 모두 수컷입니다.

하필이면 일 년 중 가장 춥다는 한겨울에 해산하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죠. 전기방석을 깔고 열 전구를 달아주고 판자와 헌옷으로 축사를 덮었지만, 추위를 해결하기엔 부족하지요.

속상한 일은 나의 배려에도 보온방석과 옷가지를 자꾸 밀어내는 겁니다. 잔뜩 웅크린 자세로 꼬옥 끌어안은 채 오로지 제 체온만으로 새끼를 보호하며 추위와 싸우는 게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어미는 먹지도 자지도 않습니다. 사료를 가져다주면 먹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주인을 경계합니다. 밥에다 다시다와 멸치를 섞어 주어도 먹지 않고 평소 제일 좋아하는 소시지와 햄을 주어도 시큰둥 입니다.

새끼들을 최대한 품 안 깊이 끌어안고 연실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새끼의 배설물을 핥아먹어 치웁니다. 이런 짓들이 다 야성이고 막을 수 없는 동물의 모성 본능이겠지요.

그런데 일이 생겼습니다. 강아지 소리를 듣고 이웃에서 구경들을 와서는 분양 신청을 하는 거예요. 세 마리밖에 낳지 않았으니 누구네는 주고 누구네는 안 줄 수도 없고 참 난처하기 그지없군요.

사실 우리 동네에는 개가 없습니다. 20여 년 전 동네가 생겨날 초기에는 집집이 개가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이주해 오면서 마을이 형성되자 개 짖는 소리가 소음이 되면서 문젯거리가 되었고 결국 개를 기르지 못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유독 우리만 개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누렁이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짖지 않는다는 겁니다.

개의 특성이라면 주인에게 충직하고, 한 마리가 짖으면 온 동네 개가 따라 짖고, 새끼는 부모의 털색을 닮으며, 군거성이 강하여 함께 어울리기를 좋아합니다.

누렁이라고 이런 기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벙어리 개가 아니죠. 훈련에 훈련을 거친 결과인데 남들은 이 진돗개의 특성인 줄만 아는 것이죠.

우리 집 누렁이가 주위 사람들에게 인가 많은 것은 깔끔하다는 것입니다. 집안에서는 변은 물론 오줌도 누지 않거든요. 대문을 열어 주면 동산으로 뛰어가 볼일만 보고 집이 궁금하여 금세 돌아옵니다.

지난여름 누렁이와 낚시를 간 적이 있어요. 집에서 6㎞ 떨어진 개울이었습니다. 낚시를 하는 동안 누렁이는 개울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즐겁게 놀았어요. 날이 저물어 낚시를 마치고 돌아왔어요. 그런데 누렁이를 데리고 갔던 것을 깜빡 잊고 집에 왔던 것이죠. 그런데 얼마 후 누렁이는 집을 찾아왔습니다. 갈 때 차에 타고 갔었는데 어떻게 혼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 두고두고 궁금했었습니다. 이 일로 누렁이는 동네 사람들에게 더욱 인기가 높았지요.

동물이 자신의 서식지 또는 산란하던 곳에서 멀리 떠났다가 다시 그 장소로 돌아오는 성질을 귀소본능 또는 회귀본능이라고 합니다.

흥부전에서 처럼 제비는 놀라운 귀소본능을 지닌 새입니다. 몇 해 전에 어느 조류 전문가가 제비의 귀소능력을 실험하고자 제비 열 마리의 다리에 인식표가 새겨진 가락지를 부착했는데 이듬해 봄, 열 마리 가운데 여섯 마리가 원래 둥지에 정확하게 돌아와 전문가를 놀라게 했었지요.

누렁이가 동네 사람들에게 점점 사랑을 받으면서 새끼 분양하는데도 많은 애로가 있게 되었습니다.

3마리밖에 낳지 않았으니 누구네는 주고, 못 주게 된 누구네에게는 뭐라고 변명을 하여야 하나. 새끼들은 아직 눈도 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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