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새가 된 철새
텃새가 된 철새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6.01.1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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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수필가>

무심천의 겨울이 깊어간다. 수면에 일렁이는 눈 부신 햇살이 갈대 사이로 빠져나와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무성한 갈대 사이로 일렁이는 수면에는 무리를 지어 먹잇감을 찾는 오리떼가 자맥질하는데, 엉덩이를 치켜든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재미있다. 뿐인가 주변에 텃새들이 무리지어 노니는 모습이 햇빛에 반사된 물결 속, 삭막한 도시인들에게 여유로움을 선사하는 겨울이다.

오리와 텃새들을 바라다보노라니 새를 좋아하는 친구 생각이 난다. 오래전 산속 생활을 하다 귀속한 친구다. 산속에서 외롭게 생활을 했으니 참으로 오랜 생활 고독하게 보냈으리라. 외롭게 보내던 그때, 산새를 좋아했을 터, 환속을 한 뒤로도 여전히 새를 좋아하고 있다.

친구는 문조와 십자매를 키웠지만 집착할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문조를 더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유별나게 깨끗하고 꼼꼼한 성격 때문에 횃대는 물론 둥지에도 오물 자국도 없을 정도였다. 문조의 아름다운 만큼 까다롭고 예민한 성격만큼 친구 역시 보통은 넘은 것 같다. 때문에 성애가 맞는 짝을 찾기 위해 조류원을 수없이 드나들 정도였다.

자연이주는 여유를 만끽하고 있던 어느 날, 관상조류를 키우던 문조가 죽었다고 친구가 울상이다. 변덕스런 겨울 날씨, 기상이변 엘니뇨 때문에 지구촌에 겨울답지 않은 겨울이 계속될 전망이라고 했다. 아마도 날씨를 예측하지 못하여 문조를 추위로 인하여 잃었는가보다. 저렇게 수많은 철새는 잘살고 있는데 관상조류는 왜 그리 약할까? 여간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사육하기가 힘들 단다. 잔기침에도 놀라고 습도, 온도 차에 예민하여 아름다움만큼 돌보기가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닌 것 같다. 오죽하면 겁이 많거나 대담하지 못하여 소심한 사람을 두고 새가슴이라고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똑같은 조건에 십자매는 살고 보배로운 문조를 잃었으니 슬픔이 극에 달했나 보다. 외려 살아남은 십자매가 평소와 달리 이상 하리만큼 얄미웠단다. 그럼에도 악조건에서 살아남은 참새목 납부리샛과에 속한 작은 새 십자매, 참새목이라 살았을까.

텃새라 함은 계절적 이동을 하지 않고 일정 지역에서 연중 살면서 번식도 하는 새를 말하고, 철새는 주변 환경에 따라 번식지와 겨울을 보내는 월동지를 오가는 조류이다. 또한 관상조류는 사람이 가까이 두고 보며 사랑하고 귀여워하며 키우는 것을 말한다. 당연 그 지역에서 나거나 자라는 동물이나 식물 따위의 종자(種子)인 토종이 잘 견디고 살수밖에. 그래서 참새목인 십자매가 추위에 어려움을 참고 견뎌나 보다.

따뜻한 봄볕을 따라와서 가을에 떠나는 여름 철새, 단풍잎이 떨어지는 늦가을에 찾아와 살을 에는 찬 겨울을 보내고 봄에 돌아가는 겨울 철새들. 이처럼 잠깐 머물다가는 것이 아닌 정착을 하는 토종텃새 비록 못생기고 때론 작기도 하지만 토종이 강한 건, 우리의 환경조건에 맞게 토착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나라의 민족정신처럼 끈질기고 강인한 민족성인 것 같다.

그런데 오리는 더 이상 철새가 아니다. 봄이 돌아와도 오리는 무심천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얼마나 발전했는가. 우리를 무시하던 일본이나 중국이 한국을 찾는 시대이다. 마치 오리가 우리 한국의 산하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듯, 그들은 더 이상 한국을 멸시하지도 무시하지도 않는다. 철새와 텃새가 어우러져 노니는 무심천변의 풍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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