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소나무
빨간소나무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6.01.1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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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겨울 볕이 유난히 좋은 날이다. 늘 안부를 전화통화로 전하던 지인과 자주 찾는 좌구산 휴양림 내 저수지에 갔다.

그곳은 둘레길이 조성이 되어 있고, 백곡 김득신 시비가 군데군데 세워져 오가는 이들에게 백곡 선생의 발자취를 일깨워 주는 곳이기도 하다.

둘레 길을 걷다 보면 항상 발걸음을 잡는 곳이 있다. 저수지 가장자리에 늠름한 자태를 자랑하는 구부정한 소나무 한그루다. 소나무 밑동 굵기로 보아 나이테를 많이 두르지 않은 듯하지만 그 자태는 소나무의 품격을 출중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밤새 안녕이라 했던가. 사계절 내내 그렇게 굳건하던 소나무가 그날 보니 염색이라도 하듯 이파리들이 빨갛게 변해 있었다. 왜일까? 올 가뭄에 목이 말라서일까? 아니면 기상이변 엘니뇨현상 때문일까? 그 무서운 솔잎혹파리 재선충 때문일까?

위상을 자랑하던 소나무는 온통 빨갛게 변해있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여름에는 더욱더 짙푸르게 우뚝 서 있고, 눈 내리는 겨울날에는 속내를 감추듯 뾰족한 이파리를 숨기려는 듯 하얗게 눈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그뿐인가 비록 크지는 않지만 노을이 질 무렵이면 물속에 잠긴 반영은 가히 그 어떤 표현으로도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비록 빨갛게 변해 있지만 그래도 소나무의 자태를 간직하고 있음에 더 아쉬움에 발길은 쉬 떨어지지 않아 한동안 머물러 있었다.

나무 중 명품은 누가 뭐라 해도 소나무가 아니겠는가. 소나무는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임이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궁궐 건축 재목에는 대략 150~300년 된 소나무를 쓴다고 한다. 송진이 나무를 질기게 하고 부패를 막아 주어 그 어떤 재목에 비해 최고의 재목이라 한다. 한옥, 자연을 닮은 곡선의 아름다움 그리고 곧게 뻗은 기둥과 대들보, 소나무만 한 재목이 없다고 한다.

곧은 소나무는 집을 받치는 가장 큰 들보인 대들보로 쓰이지만, 한편으론 사람들은 구부정하고 기이한 형태의 분재를 선호한다.

분재는 나무를 분(盆)에 심어 가꾸어 작지만 웅장한 느낌과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나타나는 예술 작품이다. 작은 분 속에 오묘한 자연의 운치를 꾸며내는 것이 분재의 본질(本質)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집에도 분재가 소나무, 느티나무, 영산홍 세 종류의 분재가 있었다. 너무나 과한 사랑을 퍼 주다 보니 소나무는 과습으로 고사가 되고 말았다. 분재 지식이 없던 난 청소 할 때마다 흙이 촉촉하도록 늘 물을 주고 또 주었다. 사랑이 넘치면 사랑 때문에 죽는다고 하더니 딱 그 짝이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한겨울에도 시들지 않아 송백지조(松柏之操)라 한다.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자라야만 푸른 하늘에 닿을 듯 곧게 자랄 것이다. 당연히 가뭄과 추위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생명력을 부여잡고 바위틈에서도 바위 위에서도 신비하리만큼 살아나는 소나무다. 그런 소나무가 빨갛게 변해 있으니 이곳에 오는 이들 모두가 아픈 마음일 게다.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겨울이 깊어진다. 짧은 겨울 해가 넘어가면서 저수지에 석양을 수놓는다. 그렇게 강직하고 늘 푸른 소나무가 왜 죽었을까? 모든 것이 군락을 이루고 산다. 동, 식물은 물론 사람도 그럼에도 군락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살다 보니 외로움에 쓸쓸해 죽었을까?

은행나무도 암, 수가 서로 마주 보아야 열매를 맺는다. 홀로 굳건히 강직하고 꿋꿋하게 살던 소나무가 외로움이 병이 되어 홀로 쓸쓸히 죽어갔으리라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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