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호의 마음
종호의 마음
  • 이효순<수필가>
  • 승인 2016.01.1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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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이효순

교회 다녀와 집 정리를 한다.

그때 충북대 입구라며 전화가 왔다. 어제 문자가 왔던 제자다.

난 서원구청 후문으로 오라고 전했다. 5분 후에 도착하여 전화를 받고 부지런히 나갔다.

초임지를 떠나온 후 처음 만나는 제자.

BMW에서 내리는 미옥이와 종호, 종호는 어린 시절 모습이 큰 눈 아래 주름진 얼굴에서 볼 수 있었다. 가까운 식당으로 가자는 그들을 우리 집으로 안내했다.

새해 첫 주말에 종호에게 문자가 왔었다. 초임지에서 담임했던 아이들이다.

지금은 어느새 50이 넘은 제자다. 이들과 소통하게 된 것은 지난가을 근무처에서 날 찾는 전화가 왔다고 전했다. 번호를 가르쳐 주어도 되느냐는 확인 전화였다. 초임지 제자라고 했다.

그 후 한동안 카톡에 정신없이 길게 답글이 달렸다. 난 어린 시절 얼굴만 기억하는데 제자들은 벌써 중년이 되어 함께 세월을 보내는 것 같았다.

가을이 가고 말없이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

오랜만에 처음 만나는 제자들인데 밖에서 대접하긴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내 정성을 그들의 마음에 담아 주고 싶었다.

집 떠난 자식들 생각하니 내 자식 같은 마음도 들었다. 굴국과 시금치나물 옻 순, 멸치조림 김치, 간단한 반찬과 함께 돼지고기를 구웠다. 조촐한 밥상이다. 제자들은 집밥이라며 흐뭇해했다.

지금도 눈에 선한 것은 아이들 생활 돌아보려 가정 방문을 갔을 때다. 부모님은 모두 계시지 않고 뜰팡에 쑥스러운 듯 서 있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당시 70년대 초에는 농촌이 매우 살기 어려웠다. 대부분 부모가 아이들만 집에 두고 일터에서 열심히 일해 살림을 꾸려갔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서울에서 고등학교 다니는 남매와 아내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살고 있단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인 나에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내가 초임지를 떠날 때 조회 단에서 울던 이야기를 한다. 그래 저도 울었다고 그때를 되돌리며 자신의 감정도 말한다.

그때 나는 저학년을 주로 맡았다. 그중엔 가정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지 않고 찾아오는 것을 보면 참 고맙고 감사하다. 그들의 마음에 나는 무엇을 남겨 주었나. 나도 그땐 20대 초반이고 집 떠난 산골의 새내기 교사였는데.

그들과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내 머리에 생각나는 제자들의 안부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짧은 시간을 보냈다.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안타까운 제자, 산골에 남아 고향을 지키는 제자, 대학 강단에서 후진 양성에 매진하는 교수가 된 제자. 여러 방면에서 자신들의 삶을 가꾸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옛정을 생각하고 찾아온 제자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안 하던 제자들이다.

퇴직하기 전 고등학교 동문회가 있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을 초빙한다고 했다.

내 담임선생님은 1학년과 3학년 때 맡아주셨던 분은 계시고 2학년 때 선생님은 고인이 되셨다.

난 정성 들여 편지를 쓰고 내 수필집 두 권과, 편지 속에 작은 마음을 담아 드렸다. 그때는 나도 염세주의에 빠져 공부도 하지 않고 책만 읽는 성적으로는 지진아였으니까. 그 후 선생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던지….

종호의 마음이 나처럼 그러하지는 않았을까.

그런 자신을 돌아보며 종호의 마음과 같음을 찾아본다.

오늘 나를 찾은 종호와 미옥이 그들에게 나의 마음이 담긴 집 밥을 함께 나누었다. 그들과 나의 정이 오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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