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다한 말
못 다한 말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6.01.1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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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지인이 연극 티켓이 있다며 내밀었다. 현장의 생생함을 느끼기 좋아하는 나는 대뜸 두 장을 받아들었다. 큰아들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아들은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랑 갈거냐고 한걱정이었다. 난 큰소리를 쳤다. “나 갈사람 많아. 너한테 맨 처음 기회를 준거야!” 그러나 정작 누구랑 가야하나 고민스러웠다. 머릿속으로 이사람 저사람 떠올려 보았다. 예상 순위 1위에게 전화를 했다. “어쩌냐 약속이 있다.” 2위 왈 “미안~ 우리 아들이 휴가 왔어.” 결심했다. 혼자 가기로.

50석 남짓한 작은 공연장이었다. 나병환자의 살갗에 생기는 부스럼 같은 멍울인 나종에 비유해 가족 간의 아픈 사랑을 그린 연극이었다. 뜻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여인! 그녀의 딸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을 그린 연극으로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한 시간 반이 넘는 공연이었지만 십분을 본 것처럼 홀딱 빠져서 봤다. 내게도 아픈 손가락이 있다. 연극에 나오는 딸처럼 그렇게 막가파는 아니지만 늘 염려되는 둘째 아들이다. 아들은 지금 먼 곳에 있다. 마음은 늘 걱정으로 가득하다. 잘 지내고 있을까? 순진하기만 한 아이, 바지에 실수를 하곤 했던 아이, 유리창을 박살내서 교무실로 불려온 아이에게 왜 그랬냐고 묻자 친구들과 돌을 던져 학교 건물 넘기기 내기를 했는데 학교는 못 넘기고 유리창만 와장창 깨 먹었다고 울먹이던 아이, 쉬는 시간이면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내게 찾아와 응석 부리던 아이 그 아이가 어느덧 자라서 군대에 갔다. 그것도 강원도 최전방 GOP에 있다.

얼마 전 아들이 휴가를 온다고 전화가 왔다. 방학인지라 어느 정도 여유가 있기도 했지만 걱정이 되어 데리러 간다고 하자 한사코 싫다고 했다. 본인이 버스 타고 알아서 올 거라고 했다. 정말 아들은 버스를 타고 와서는 씩씩하게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출발 후 6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문이 열리고 까까머리 아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내밀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어서와 아들~!” 반가움에 큰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보고 싶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입 밖에도 못 꺼내고 겨우 한다는 말이 “밥 먹자”였다. 경상도 사내도 아닌데 왜 그 말만 나오는지. 요즘 밥 못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촌발 날리게 왜 그 말만 맴돌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후회가 된다.

밥을 먹는데 아들의 손톱이 이상했다. 왜 그러냐고 묻자 군에서 헬스장 청소를 하다가 운동기구에 손가락을 다쳐서 손톱이 빠진 거라고 했다. 손톱이 빠질 정도면 얼마나 아팠을까. 전화통화 할 때도, 편지에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건만 내색도 안하고 새 손톱이 날 때까지 혼자 이겨낸 것을 생각하니 가슴을 쿡쿡 뭔가가 찌르는 듯했다. 아들이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군대가 아들을 그토록 늠름하게 키워내고 있었다.

두 시간이 가까운 공연을 보고 난 갈채를 보냈다. 그리고 국가의 부름을 받고 강원도 최전방에서 밤새 나라를 지키며 씩씩한 남자로 성장하고 있을 내 아들을 생각했다. 어둠이 펼쳐진 도로를 밟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둠 속에 그날 못 다한 말을 나지막이 풀어 본다. “보고 싶다 아들~! 사랑한다 내 아들 이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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