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새해에는
  • 박경희<수필가>
  • 승인 2016.01.1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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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 박경희

새해 들어 결심한 것 중의 하나가 월 두 번 이상은 산에 오르겠다는 것이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새해에는 책을 많이 읽겠다. 에어로빅을 열심히 하겠다. 새해에는, 새해에는….” 하며 스스로 들볶던 경험이 있어 올해에는 지킬 수 있는 결심을 한 것이다.

지난 연휴에 이어 두 번째 산행. 오늘은 두타산을 올랐다. 두툼한 파카와 장갑, 혹시나 싶어 아이젠을 준비했다.

승용차의 버튼을 눌러 바깥 온도를 확인하니 영하 10도 5분 만만찮은 날씨다.

앞서간 사람도 보이지 않고 뒤따라오는 사람도 없다.

산의 공기를 혼자 독차지하고 천천히 올랐다. 산등성을 따라 계속 걷는 길은 거추장스런 옷을 모두 벗고 제 모습을 보여주는 나무들과 점점이 푸른 옷을 입은 소나무들과 아직도 미련처럼 잎이 남아 있는 나무들이 어울려 그려내는 한 폭의 담채화 같다. 호흡을 할 때마다 하얀 입김이 수증기처럼 토해졌다.

청설모 한 마리가 바스락바스락 나뭇잎 밟는 소리를 내며 내 앞에서 왔다 갔다 한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보니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가 보다. 가지고 온 간식을 나눠주었다. 처음에는 멈칫거리더니 예민한 후각으로 찾아서는 덥석 물고 나뭇가지로 올라가 두 발로 움켜잡고는 앙증스럽게 먹고 있다. 의도하지 않으면서 존재함으로 수많은 생명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자연의 무한 자애로움을 다시 느끼는 순간이다.

첫 번째 능선에 올라서자 등에서는 땀이 나는데 뺨은 면도날로 에이는 것처럼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팔을 크게 휘두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솔밭이 뽀드득 소리를 내다 말고 놀랬는지 발밑의 비명이 빠르게 느껴졌다.

하지만 달리는 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군데군데 빙판이 달리는 것을 거부한 것도 있지만 작년부터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아랫배가 지쳐서 못 가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작은 나무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한 숨을 돌리고 사방을 둘러본다. 주변에 참나무, 소나무, 싸리나무 등 고만고만한 나무들만이 말없이 반기는 가운데 자연에 동화가 되었는지 갑자기 편안해졌다.

너그러운 마음이 되어 기도를 드렸다.

“새해에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순간 “내가 누굴 용서한다고?” 나의 기도가 적반하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기심, 분노, 집착수준의 자기연민 등으로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못할 짓을 시켰는지를 돌아보니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져서 정상을 저만큼 앞에 두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추위는 이미 사라졌다.

땀을 흘리며 마지막 혼신을 다하여 산봉우리에 오르고 보니 이곳이 정상임을 표시하는 작은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고 넓적한 상석의 제단이 하나 놓여 있다.

그 정상 가득히 내리쬐는 아침의 태양은 강렬했다. 그리고 따뜻했다.

지금 저 해는 어느 땅에서는 해넘이일 것이다. 해넘이와 해돋이의 붉은빛은 다르지 않다.

처음과 마지막이 다르지 않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상징일 것이다.

두 팔을 크게 벌리고 태양을 안았다. “올해엔 내가 먼저 용서받도록 노력하게 하소서 그리고 그다음에 남을 용서하게 해 주소서.” 나를 낮추고 걷는 하산 길은 한결 가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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