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새해
달빛 새해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6.01.0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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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자연인들 모여라!”

문자가 날아들었다. 새해를 시작하는 모임을 조촐하게 하자는 도원리 언니의 문자였다.

느닷없이 번개팅을 하기로 했다. 달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을 가진 월문리 우리 집에서 뭉치기로 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 달빛을 온몸에 적시며 지난 한 해를 회상하고 달빛 가득 머금은 바람 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이야기했다.

그렇게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 자연스럽게 어울려 오는 한 해를 맞이했다. 마당의 모닥불도 불꽃을 피워 올리며 달빛 옆에 졸고 있는 잔별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하늘에 얼굴을 내민 달을 보며 생각한다. 미당에게 달은 마음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이었다. 그리고 시인 이태수에게 달은 손톱을 깎아 하늘에 던져 놓은 것이 되었고 또 나도향에게 달은 가슴이 쓰리고 저리도록 가련한 것이기도 했다.

이렇듯 달이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것은 모양을 바꾸는 특성이 한 몫하지 않았을까. 해는 그냥 언제나 해인데 달은 그 모양도 이름도 가지가지다. 어떤 날을 초승달이었다가 어떤 날을 반달이었다가 어떤 날은 보름달이 되었다가 어떤 날은 그믐달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달은 다양한 의미로 내 가슴에 떠있다.

내게 달은 포근한 기억이다. 어린 나를 등에 업고 추운 골목길을 걸어가는 엄마의 따듯한 등에서 올려다보았던 포근했던 유년의 달. 친구들과 바닷가 모래사장에 누워 이야기하며 눈에 담았던 학창시절의 달. 카페에 앉아 서로의 마음을 열어 놓았던 추억 속의 그 사람을 비추어 주던 달. 달은 내게 포근했던 지난 시간들의 추억을 꺼내준다.

내게 달은 묵묵한 선비다. 어릴 적 교통사고로 병실에 누워 있을 때 창가에 떠 있던 희망을 던져 주던 달. 신생아실에 누워서 나를 보면 방긋거리던 아이의 얼굴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 본 하늘에서 고요히 나를 비추어 주었던 달. 아버지를 품은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것을 조용히 내려다보던 달. 달은 그렇게 내 아픔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말없이 보듬어 주는 넉넉한 선비처럼 늘 그만큼의 거리에서 나를 지켜준다.

내게 달은 거울이다.

달을 보면 그 안에 마치 사람의 얼굴이 나를 보며 웃고 있는 듯하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며 나를 반추해 본다. 그동안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한 적은 없는지, 남의 것을 탐한 적은 없는지, 정녕 내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는지, 저 달처럼 환하고 밝은 얼굴로 미소 지을 수 있는지 달은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문득 생각에 잠긴 내게 도원리 언니가 새해의 소망을 이야기하란다.

“새해에는 포근하게 다른 사람을 품어주고 묵묵하게 다른 이를 비추며 보듬어 주고 그리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겸손하게 사는 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나는 말했다.

정말 그렇다.

병신년 새해에는 늘 그 자리에 있되 도드라지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잔잔하게 모든 사람을 비추는 달빛 같은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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