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작은 소동
그녀의 작은 소동
  • 배경은 <사회복지사>
  • 승인 2016.01.0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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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배경은 <사회복지사>

다급하게 지구대에서 전화가 왔다. 그녀가 또 난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는데 출동한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진정이 안 된다는 거였다. 상황이 이러니 와 달라는 경찰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이런! 지금시각 아침 6시 30분. 서둘러 아이들 아침 준비를 마치고 사정 이야기하며 늦지 않게 등교할 것을 당부하고 그녀의 집에 도착하니 7시가 되었다.

그녀는 초겨울 추운 날씨에 현관문을 열어 놓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내가 온 것을 안 그녀가 더욱 고성을 지르며 경찰관에게 반항을 했다. 다행히 흉기를 손에 들고 있지는 않았다. 사실 내가 간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것은 그녀의 오랜 습관이기도 하다. 평소 소심하고 얌전하지만 이웃과 혹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쌓아 두다가 폭발할 즈음에 술을 마시고 자해 혹은 난동을 부리며 119와 경찰을 불러 한바탕 굿을 치러야 진정을 한다.

지난번 난동 때는 끝까지 칼과 가위를 내려놓지 않아 경찰관이 테이저건을 사용했다. 정신이 없는 그녀를 경찰차에 실어 정신과로 응급실로 뛰어다녔고 폭력성이 짙었던 행동 때문에 사건이 검찰로 넘겨지게 되었다. 만성 우울로 실형은 아니지만 벌금이 나올 것이라는 말에 나는 복지사로서 그녀를 위해 탄원서를 비롯하여 진료기록지와 초기상담일지를 작성하고 진단서를 떼서 경찰서에 제출했다. 다행히 기소유예가 된 지 불과 두 달, 그녀가 다시 난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감옥에 보내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경찰차 문을 잡아당기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경찰관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보통은 별 무리없이 넘길 수 있는 말이 그녀에게는 큰 상처가 되어 마음에 골이 깊이 패이고 출혈이 생긴 것이다.

현재는 소리를 지르고 격렬하게 몸싸움이 끝난 뒤라 조금 누그러진 상태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 일단 경찰관을 보내드리자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난동으로 다시 검찰에 사건이 넘겨지면 더 이상 도와주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하니 더 조용해졌다.

경찰차가 돌아가고 골목은 다시 조용한 아침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집으로 함께 들어와 따뜻하게 입히고 커피를 끓여 마주 앉았다. 더 깊은 그녀의 상처를 듣는다. 아주 오래된 상처부터 최근의 상처까지 모두 듣는다. 잠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길에서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욕을 하며 걸어가는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어 차라리 감옥에 갇히고 싶었다고, 그리고 피식 그녀가 웃는다. ‘복지사님, 저 바보 같죠?’ 대답 대신 가만히 그녀의 등을 쓸어주고 다독였다.

그녀의 만성 우울은 역사가 깊다. 신혼 초 딸아이를 데리고 이혼한 뒤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수십 번 자살시도를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남은 것은 팔목에 그었던 자살시도의 흔적과 피폐해진 정신이 전부였으나 그녀의 살아갈 마지막 힘은 외동딸이었다.

그녀의 벽시계는 늘 현재시각보다 40분 빠르다. 딸아이의 등교시간을 놓칠까 하는 마음에서 시계를 앞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아무리 불면의 밤과 환청이 자신을 힘들게 해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따뜻한 밥을 해서 딸을 챙긴 모성이 그녀를 여기까지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의 상처 뿐인 이야기가 딸아이로 돌아오면 마음이 풀어졌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라면이라도 끓여 아침 먹을 것을 권유하고 그녀의 집을 나섰다. 정오쯤 그녀로부터 점심 맛있게 먹고 운전조심해서 다니라는 문자를 받았다. 이렇게 한 번씩 난동을 일으키며 존재감을 나타내는 그녀가 밉지 않다. 그렇게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의 존엄에 함부로 어떤 잣대도 대고 싶지 않다. 다만 그녀가 나를 만나서 조금이라도 편안해지며 이 세상에 자기편이 한 사람은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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