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15년
아듀 2015년
  • 김기원<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12.30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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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2015년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이 가면 2016년 새해를 맞고 곱든 싫든 누구나 다 나이 한 살을 더 먹습니다. 고맙게도 조물주는 나이에 차별을 두지 않았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빈자든 부자든, 강자든 약자든, 잘났든 못났든 때가 되면 똑같이 나이를 먹게 했습니다. 아무도 가는 세월 못 붙잡고, 오는 세월 막지 못합니다. 이처럼 공평한 게 세월이지만 허망하기 그지없는 것 또한 세월입니다.

19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라는 묘비명을 남겼습니다. 95세 장수를 누린 그였기에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큽니다.

인생은 유한한데 세월은 정처 없이 흐릅니다. 그런 줄 뻔히 알면서 우물쭈물하다가 또 한 해를 보내고 말았습니다. 어찌 미련과 회한이 없겠습니까? 보람과 기쁨이 없진 않았지만 지나놓고 보니 그때 좀 더 잘할 걸 하는 후회가 가슴을 칩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했던 사람, 고맙고 감사한 사람, 무시로 부대끼며 살던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과 행위로 상처주고 소홀히 한 죄가 참으로 크고 무겁습니다. 다 이기와 부덕이 낳은 아픔이자 실책입니다.

하여 윤동주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인연 줄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쓰고, 그 이름들을 하나씩 나직이 불러봅니다.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고해하며 행복하기를 충심으로 축원합니다. 연말이 되면 신문과 방송들이 한 해를 조명하는 10대 뉴스를 선정하고 발표합니다. 사람들도 크든 작든 저마다 자신의 10대 뉴스가 있습니다. 2015년 제 10대 뉴스는 이렇습니다.

38년의 샐러리맨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것, 대학교수가 되어 강단에 선 것, 1년간 매주 두 편의 칼럼을 신문에 연재한 것, 서재가 있는 조용한 집으로 이사한 것, 장인어른 분묘를 개장하여 납골당에 안치한 것, 손녀로부터 할아버지 소리를 들은 것, 절친과 관계가 소원해진 것, 45년 만에 중학교 동창들과 해후한 것, 결혼식 주례를 여러 번 선 것, 족저근막염으로 운동을 못해 배불뚝이가 된 것입니다.

돌아보니 1년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나이테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해마다 쌓이는 이런저런 일들이 역사가 되고 인생이 되는 거였습니다.

혼용무도(昏庸無道). 대학교수들이 뽑은 2015년 올해의 사자성어입니다. 나라 상황이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이지요. 봄에는 메르스라는 전염병이 창궐해 온 나라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더니, 여름에는 극심한 가뭄과 더위가 민초들을 지치게 했습니다. 가을이 되자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과 우리 측 확성기 방송으로 남북이 극한 대립을 했고, 겨울이 되자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와 노동관계법을 놓고 민노총과 사회단체들이 민중총궐기대회를 열며 공권력과 난타전을 벌였습니다.

제1야당은 문재인당과 안철수당으로 둘로 쪼개지고, 집권여당은 20대 총선 주도권을 놓고 친박과 비박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수출은 줄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고 있는데 정치권이 이모양이니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그야말로 혼용무도입니다.

열흘 전 규모 3.9의 익산발 지진이 입증하듯 유럽을 강타한 자살폭탄테러와 지진의 참화가 한반도를 언제 어떻게 덮칠 줄 모릅니다. 철저히 대비하지 않고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정말 혼돈의 나락으로 빠집니다.

국가도 개인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지만 세우는 건 하세월입니다. 아픈만큼 성숙해지리라는 믿음을 안고 또 한 해를 보냅니다. 2015년이여 안녕!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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