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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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숙<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5.12.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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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엄마, 대찌대찌하고 이렇게 하는데 가고파.” 세 살 박이 아들이 양손을 번쩍 치켜 올려 벌 받는 시늉을 하며 그날도 여지없이 졸라대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학원에 보내달라는 아이를 앞에 두고 아이를 달래기 위해 그곳에 가면 선생님이 손바닥을 때리고 잘못하면 벌을 준다고 으름장을 놓았지요.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아이는 그렇게 하는 곳에 가고 싶다며 치맛자락을 끌었습니다.

‘그래, 가보자! 낯선 환경에 부딪히게 되면 저도 생각이 변하겠지.’ 생각하며 아이의 손을 끌고 미술학원으로 향했습니다.

아이는 학원에 들어서자 집에서의 당당하던 기세는 소금기 먹은 배추처럼 시들어갔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번 직접 보여주길 잘한 것 같다.’ 속으로 난 쾌재를 불렀습니다.

선생님과 상담을 하는 동안 아이는 학원 구석구석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시하더니 어느 틈에 미끄럼에 올라가 몸을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혼자서 그것도 난생처음 와본 공간에서 미끄럼을 타는 폼이 대견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여 아이를 떠보기로 했습니다.

“00야! 엄마 갈게. 엉아랑 누나랑 놀다와!”라고 하자 “네.”하고 한마디 툭 하고는 엄마의 목소리가 사라져도 전혀 개의치 않겠다는 듯 아이는 다시 미끄럼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잰걸음으로 나가는 시늉을 하고 고개는 여전히 아이를 응시하며 재차 확인을 했습니다.

“엄마 갈게. 빠이빠이.”그러나 아이는 잠시 눈을 돌려 “빠이빠이.”를 할 뿐 아무런 동요도 흔들림도 없이 꿋꿋하게 놀고 있었습니다.

서운함 반, 불안함 반으로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혹시 울지나 않을까? 또래가 하나도 없던데 큰애들한테 맞지나 않았을까?’ 기우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 눈은 시계의 초침을 향했습니다.

그날따라 시계 소리는 왜 그리 크던지요.

드디어 아이가 올 시간이 되었습니다. 결혼식장에 들어선 신부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 맞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빨간 차에서 뽀얗게 웃으며 내리는 아이의 모습은 모든 불안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마치 무죄선고를 받은 미결수처럼 가슴 한구석에서부터 기쁨이라는 단어가 확 피어났습니다.

난 아이를 잡고 물었습니다. “잘 놀았니? 선생님 예쁘니? 내일 또 갈 거니? 엉아들이 때리지 않던?”

아이는 “네. 선생님 이뻐. 빨간 차 타고 가고파. 엉아 안 때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낭랑한 음성으로 대답했습니다.

너무 대견스럽고 예뻐서 잘 익은 복숭아 빛깔 같은 아이의 볼에 연신 쪽쪽 거리며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이는 집으로 와서도 학원에서의 기억을 더듬으며 “엄마 엉아가 다섯이면 오만큼 있어.”라고 형들이 많았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일찌감치 꿈속으로, 잠 속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난 그 옆에서 한없이 아이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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