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나무 잎
모과나무 잎
  • 이효순<수필가>
  • 승인 2015.12.2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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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이효순

밤바람에 물들지 않은 나뭇잎이 수북이 떨어졌다. 우리 옆집에 있는 모과나무다.

거의 30년 자란 모과나무는 그 집 안방 창문 앞을 모두 가렸다. 전깃줄도 가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 잎이 떨어져 골목 바닥에서 춤을 춘다. 골목길은 바람 부는 대로 잎사귀들이 몰려다니며 길을 어지럽힌다.

우리가 사는 골목은 집집마다 마을이 생길 때 몇 그루씩 나무를 심었다. 우리 집과 앞집도 감나무 유실수를 들였다. 작았던 감나무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감도 달렸다. 가을이면 감 따는 재미도 솔솔 있었다. 감나무가 자라자 가지가 담 밖으로 뻗어갔다. 감이 익을 때는 몇 개씩 떨어져 골목길에 빨간 그림을 그리곤 했다. 출근해서 돌아오면 미처 쓸지 못한 감잎들이 골목에 널브러진다.

어느 해 가을 감나무를 베었다. 아까웠다. 하지만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초겨울이 되며 감잎이 막 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잎을 밟고 다녔다. 길이라 우리만 생각할 수 없어 감나무를 베었다. 앞집도 2년 후 감나무를 베고 나니 우리와 앞집 골목길은 깨끗해졌다. 그리고 미처 쓸지 못했을 때의 부담도 덜었다. 문제는 옆집이었다. 그 큰 모과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을 한 번도 쓸지 않고 있었다. 아무 감각이 없는지 몇 년이 지나도 쓸지 않는다. 담보다 높은 나무는 옆에 있는 그 집 뿐이었다. 해마다 앞집에 있는 이와 내가 보기가 좋지 않아 쓸곤 했다.

한 달 전이었다. 그날도 골목에 날아다니는 모과나무 잎을 수수비로 쓸어 그 집 대문 옆에 비닐봉지에 담아 세워 두었다. 전에는 그 낙엽을 모두 쓸어 우리 집으로 가져왔었다. 그래서 쓰레기 버릴 때 함께 버렸다. 몇 년을 그렇게 했다. 젊은 여주인에게 말하기도 쉽지 않아 앞집 지인과 함께 했다. 그 여인은 아기가 어릴 때부터 그 집에 살았다. 그 아이가 커서 중학생이 되었다. 내가 쓸어도 되지만 한 번 알아듣도록 말해 보고 싶었다. 이런 용기도 지난봄에 도배할 때 음식점에서 그와 만나 사는 이야기도 나누었기 때문에.

하루는 남편과 시장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그 여인을 그집 대문 앞에서 만났다. 나는 자연스럽게 “아기 엄마, 제가 모과나무 잎사귀 비닐봉지에 쓸어 담았어요. 쓰레기 버릴 때 함께 버리세요.”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 후에도 계속 나뭇잎이 떨어지면 비닐봉지에 담아 그렇게 했다. 어느 날 그 여인은 내가 나뭇잎을 다 쓸고 비닐봉지에 담고 있을 때 빗자루를 들고 나왔다. “제가 쓸려고 했는데…”하며 미안한 듯 웃으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 후 골목은 가끔 어설프게 비질한 흔적이 보였다. 처음엔 자기집 앞에 떨어진 잎만 쓸었다. 바람 불어 우리 골목까지 날아온 것은 그냥 두었다. 그렇게 그 여인의 나뭇잎 쓸기는 시작되었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집을 나섰다. 골목은 나뭇잎이 가득했다. 밤에 바람이 많이 분 것 같다. 귀가할 때 골목에 들어서니 말끔히 청소되어 있었다. 우리 집과 앞집 앞에 있는 잎사귀까지 모두 쓸었다. 좀 더디게 쓸면 내가 쓰는 것을 아는지 요즈음은 자주 골목길은 물론 집 앞까지 날아온 것도 쓴다. 차츰 변해가고 있다. 그 여인이 자기집 앞의 모과나무 잎을 청소하기까지 참 오랫동안 기다렸다. 오랜 기다림의 결실로 골목길은 깨끗하게 청소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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