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철조망
십자가와 철조망
  • 임성재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2.2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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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도시마다 중심도로가 있다. 그 도로를 따라 조성된 건축물이나 시설물 등은 한 도시의 역사를 보여주기도 하고 문화 수준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중심도로 주변은 경관지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청주시의 중심도로는 도청 앞 상당사거리에서 육거리 시장 쪽으로 뻗은 ‘상당로’와 상당사거리에서 공단오거리까지 왕복 6차선으로 곧게 뻗은 약 4Km 거리의 ‘사직대로’다. 이 사직대로의 중간쯤에 ‘시계탑사거리’가 있다. 지금은 도로가 넓어져 차량통행이 많아지고 도로가에 높은 건물들이 세워져서 그런지 거리를 지날 때 시계탑이 눈에 잘 띠지 않는다. 시계탑의 모습도 청주의 명물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하다. 하지만 청주시민들에게 ‘시계탑사거리’라는 명칭은 시계탑의 규모나 존재여부와 관계없이 거리 표식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청주지방법원이 옮겨 간지가 수 십 년이 되었는데도 탑동 사거리를 ‘구 법원사거리’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 시계탑사거리 좌우에 언제부터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아주 생뚱맞은 풍경이 펼쳐져있다.

하늘높이 치솟아있는 십자가와 거칠고 험악하게 쳐져 있는 철조망이다.

청주대교에서 사창사거리 쪽으로 가다보면 시계탑사거리 좌측에 대형교회건물이 서있고 그 꼭대기에 건물 2,3층높이는 족히 돼 보이는 대형 십자가가 우뚝 걸려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청주대교를 건너서면 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십자가는 사직사거리를 지나면서 엄청난 위용으로 다가온다. 일반적으로 교회건물마다 세워놓은 십자가와는 크기에서부터 차원이 다르다. 특히 해가 지고 십자가에 불이 들어오면 사직대로의 밤하늘은 여러 색깔로 변하는 십자가의 불빛으로 가득 찬다. 밤하늘의 별빛도 깜깜한 밤하늘의 적막도 십자가의 불빛에 눌려 사라져 버리고 만다. 사직대로를 지날 때 마다 이 십자가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십자가가 기독교인들에게는 구원의 상징이라 할지라도 비 기독교인이 더 많은 도시에서 한 종교의 상징물이 도시의 중심 하늘을 가로막고 점령해도 되는 것인지 말이다. 또 시에서 건축허가를 내줄 때 저 십자가의 크기와 높이도 심의를 했는지, 공중에 떠있는 구조물에 대한 심의는 어떠한지, 도시경관과의 조화를 고려했는지, 철저한 안전점검은 했는지도 늘 궁금할 뿐이다.

시계탑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눈길을 돌리면 사직대로 큰길가 인도를 따라 휴전선 철책 같은 철조망이 보인다. 어른 가슴높이정도의 돌로 된 축대 위에 한 2미터정도 높이의 철책 담이 쳐있고 그 위에 군사보호 시설쯤에서나 봄직한 둥그렇게 원통처럼 말린 철조망이 길게 둘러쳐 있다. 축대 위 경사면에는 담장으로도 손색이 없을만한 나무들이 심어져있고 그 위에는 또 다른 담장이 둘러쳐 있는데도 무슨 이유로 청주시의 중심대로 가에 철조망을 칠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아무리 둘러봐도 군사시설이나 중요한 보호시설 같지는 않고 대지가 제법 넓은 개인주택으로 보이는데 보안용 담이라고 하기에는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심도로를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느낄 거부감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1960년대쯤에는 담을 넘어 들어오는 손님들을 방지하기 위해 담장 위에 깨진 유리조각을 꽂아 놓기도 하고, 높은 담장에 빙 둘러 철조망을 치기도 했었다. 그런데 경제발전과 주거환경의 변화, 주민의식의 변화 등으로 이런 살벌한 풍경이 사라진지도 수 십 년이 된 것 같은데 뜬금없이 청주시의 중심대로에 이런 풍경이 펼쳐져있는 것이 황당할 뿐이다.

일반적으로는 교회건물에 종탑이나 십자가를 세운다거나, 사유지 담장에 철조망을 친다고 해서 시비 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많은 시민들에게 혐오감이나 위압감을 주고 도시미관을 해치는 곳에 설치되어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고려해 볼 일이다. 건축법이나 도로법, 청주시 조례 등 명문화된 규정을 들추지 않더라도 행정관청에서 나서서 꼼꼼히 살펴보고 고치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일모레면 예수가 태어나신 성탄절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해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가 저 높은 곳에서 하늘을 뒤덮을 듯 빛나고 있는 십자가를 본다면,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시던 예수가 큰길가에 휴전선 철책처럼 둘러쳐진 철조망 담장을 본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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