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케이신문 무죄를 통해 본 지방언론보도의 명예훼손
산케이신문 무죄를 통해 본 지방언론보도의 명예훼손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5.12.2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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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산케이신문 지국장에 대한 서울중앙지법의 무죄판결은 대한민국의 ‘언론자유’라는 화두에 결정적 시금석이 됐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만큼 이번 사안은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개인들의 인권의식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그동안 언론을 가장 짓눌러 왔던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과 관련된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이번 판결이 만에 하나 악화된 한일관계를 의식한 정치적 판단을 고려했다고 하더라도 언론의 본질을 가장 실체적인 관점에서 다뤘다는 점에서 그 상징성은 결코 희석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한 우리나라의 언론, 특히 지방언론의 현실을 한 번 곰곰 되짚어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미 알려진 대로 문제가 된 산케이의 기사는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당시 증권가에 루머로 나돌던 특정인과의 사적관계를 적시한 내용이 보수단체에 의해 고발됨으로써 사건화됐다.

하지만 법원은 산케이신문이 허위사실을 기사화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이를 명예훼손으로 판단하지는 않았다.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을 여성이라는 사인(私人)의 기준에서 혐의를 찾으려 했지만 법원은 이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 공인의 시각으로 접근한 것이다.

그러면서 법원은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다른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거짓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만 성립한다”면서 “국가적 관심 사안인 세월호 사고 당일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미필적 고의에 의한 허위라 하더라도 비방목적은 인정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달았다.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맞지만 대통령이라는 공인에 대한 언론보도의 자유는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게 판결의 핵심이다.

이번 판결을 보면 선진 미국의 언론자유, 더 나아가 세계의 언론자유 문제에 결정적 터닝포인트가 된 1964년 미연방대법원의 설리번 사건 판결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상당히 있다. 당시 판결을 내린 대법관은 “공적 문제에 대한 토론은 절대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공직자들에 대한 격정적이고 통렬하며 때로는 불쾌할 정도로 날카로운 공격이 포함될 수 있다. 자유로운 토론에서 오류가 있는 언사는 불가피하다. 언론의 자유가 존속되려면 언론은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이때 제시된 것이 ‘현실적 악의의 원칙(actual malice rule)’이다. 쉽게 말해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기자나 편집책임자가 그 내용이 허위임을 알면서도 이를 무모할 정도로 무시하고 지속적으로 보도했을 때만 해당하며 이조차도 피고가 아닌 소(訴)를 제기한 원고가 입증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공인과 공직에 대해선 이 정도의 언론비판과 견제를 허용해야 민주주의가 유지된다는 것을 일침했다고 보면 된다. 공인에 대한 단순 실수나 착각에 의한 허위사실 적시는 명예훼손의 근처에도 갈 수 없다. 그래서인지 자본주의의 부패현상이 가장 심각한 미국에서는 공인에 대한 언론의 명예훼손 사건은 눈을 씻고 봐도 거의 없다. 클린턴이 여비서와의 섹스스캔들로 시끄러울 때 미국 언론들은 대통령 클린턴의 성기 생김새까지 기사화하며 들이댔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의 힘은 공인과 공직자에게 이런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현재 우리나라의 언론 현실은 이와는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 형법상 공인(公人)에 대한 명예훼손죄가 사인(私人)과 거의 같은 잣대로 재단되다 보니 언론경영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소는 다름 아닌 명예훼손 피소건이 됐다. 툭하면 형사고소가 남발되고 또 이에 따른 민사 손배소로 말미암아 숨 쉴 공간은커녕 아예 숨쉬기조차 버겁다.

지방언론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사회적 인식이 지방언론은 토호 세력들이 장악하고 있고 또 그 구성원들 역시 자질미달이라는 선입견에 너무 경도된 나머지 무슨 명예훼손 사건만 빚어지면 당국이 가차없이 일반 형법 논리를 적용하느라 애를 쓴다. 지방언론의 난맥상에 대한 지적은 일정부분 타당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된다면 그 당사자들이 불이익을 받아야지 애먼 언론종사자 전체가 도매급으로 매도되어선 결코 안 될 것이다.

삼권 분립의 정신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금 국회는 쪼개지고, 야당은 헤매는가 하면, 여당 의원들은 충성경쟁에 정신줄을 놓으며, 여당 대표라는 사람은 대통령한테 응석부리기에 급급한 현실에서 그래도 언론만큼은 꼿꼿하게 중심을 지켜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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