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저균에는 침묵하는 정부
탄저균에는 침묵하는 정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5.12.2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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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미군이 서울 한 복판인 용산기지에서 15차례나 탄저균 성능 실험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미 공동조사단이 밝힌 내용이다.

지난 5월 처음 탄저균 문제가 터졌을 때 미군은 “이번 실험이 처음이다”고 밝혔지만 조사 결과 거짓말로 드러났다. 수년간 16차례나 실험이 진행됐고, 그 중 15번은 인구가 밀집한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였다. 페스트균도 함께 들여왔지만 세균 반입과 실험 사실을 우리 정부에는 알리지도 않았다. 미군이 워싱턴이나 뉴욕, 로스엔젤레스 같은 자국의 대도시에서 이런 실험을 하겠는가.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의 밀폐된 공간에서 한다고 들었다. 남의 나라 수도 중심가에서 유출시 참사가 우려되는 탄저균 실험을 해당국에 사전 통고는 물론 사후 통보도 없이 장기·주기적으로 해 온 것은 심각한 외교적 결례에 해당된다. 하지만 미군의 무례에 대해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묵묵부답이요, 유구무언이다. 파리나 베를린 한 복판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프랑스나 독일 정부도 가만히 있었을까.

북한의 생물학전 위협에 대비하겠다는 실험 목적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명분이 확고하더라도 국민의 안전이 우선됐어야 하고 국가간 외교적 절차와 상호 예우가 중시됐어야 했다. 상대국 정부를 곤경에 빠트리고 우방국 국민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낸 오만한 행태에는 변명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이같은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다 뒷통수를 얻어맞은 우리 군과 정부가 침묵으로 대처하는 모양새는 보기에도 민망하다. 정부는 국민 안전을 위해 테러방지법을 추진하며 야당의 비협조를 질타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안전을 무시한 미군과 미 정부에는 할 말이 없는 것인가.

구속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경찰이 소요죄를 추가 적용해 논란이다. 이 죄가 성립되려면 폭행·협박·손괴 행위가 한 지방의 평온과 안전을 해할 정도로 규모가 커야한다. 학자나 전문가들은 폭동에 육박하는 수준이 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민노총이 주도한 1차 민중총궐기대회의 폭력적 요소가 이같은 범주에 해당하느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법 적용의 적절성 문제를 떠나서도 그렇다. 형법 제정 후 지금까지 소요죄가 적용된 사례는 79년 부마민주항쟁,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등 4차례에 불과했다. 4건 모두 군사정권에서 적용됐고 나중에 모두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됐다. 이같은 전력때문에 소요죄는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악법으로 꼽히기도 한다. 기소와 재판 과정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괜한 오해만 뒤집어쓰고 망신만 살 수도 있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미 8개 혐의가 적용된 한 위원장에게 굳이 소요죄까지 덧붙여 송치하는 강수를 뒀다.

불법시위 근절을 위해 30년 가까이 사장됐던 법까지 꺼내든 추상같은 기세와 미군의 일방적 탄저균 실험에는 눈치만 보며 함구하는 저자세는 극명하게 비교된다. 얼마 전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부자 나라인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에 푼돈만 부담하고 있다”는 궤변을 펼쳐 구설에 올랐다. 정부의 태도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지만 미국이 얻는 것이 무엇이냐”는 트럼프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트럼프의 말대로 우리에게 베풀기만 하는 은혜의 나라로 미국을 인정하고 가자는 것인가.

이번 조사도 미군이 보안을 이유로 자료 공개에 소극적으로 나와 충분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미군의 일방적이고 제한적인 공개 자료에만 의존한 이번 조사가 탄저균 사태의 전모를 밝혔다고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조사 과정에서조차 목소리를 내지못하고 미군에 끌려다닌 데서는 주권국가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정부의 대응이 유약하다 보니 양국이 앞으로 관련 절차를 투명하게 개선하기로 했다는 약속에도 믿음이 가지않는다.

국가권력은 정당성 못지않게 형평성도 유지해야 한다. 내 편과 강자에는 관대하고, 상대와 약자에게는 가혹한 이중적 잣대를 적용한다면 국민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더욱이 국민 안전이 결부된 사안이라면 상대가 동맹국이라도 당당하게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않으면 국민에게만 큰 소리치는 정부라는 비아냥을 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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