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집 아기
섬집 아기
  • 이수안<수필가>
  • 승인 2015.12.20 18:0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이수안<수필가>

서연이가 어린이집에서 올 시간이 되자 오늘 새로 내려받은 동요를 틀고 제 어미가 마중 나갔다.
“다녀왔습니다.”
떠들썩하게 모녀가 들어올 때는 여자아이의 청아한 목소리에 실린 <섬집 아기>가 차분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그동안 듣던 밝은 느낌의 동요와는 다른 멜로디가 서연이의 감성을 건드린 걸까. 두 눈을 말똥하게 뜨고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음악을 듣더니 제 어미에게 물었다.
“엄마, 왜 아기가 혼자 잠을 자?”
“응, 엄마가 바닷가에 굴 따러 갔거든.”
“아빠는?”
“아빠도 엄마랑 같이 일하나 봐.”
그러는 사이 2절이 시작되었다. 서연이의 질문 때문이었을까. 나도 평소와는 달리 가사를 생각하며 새겨들었다. 아기는 곤히 자는데 엄마는 아기 걱정에 굴 바구니도 못 채우고 모랫길을 달려온다는 것이 2절 가사다. <섬집 아기>의 맑은 선율 때문이었을까. 노래가 끝나자 내 안에 쌓인 모든 때가 깨끗이 헹궈진 느낌이었다.

다음 동요가 시작될 때였다. 가만히 서서 음악을 듣던 서연이의 손이 눈으로 갔다. 처음에는 한쪽 눈만 비비더니 바로 두 손을 번갈아가며 눈을 훔치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와락 제 어미 품을 파고들며 크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유를 듣고 보니 혼자 자는 아기가 불쌍해서라는 것이었다.

<섬집 아기>는 내가 어릴 적부터 불리던 동요다. 오랜 세월 불러온 동요지만 2절은 가사도 모르면서 막연히 쓸쓸하다는 느낌만 받았던 터다. 그런데 세 살짜리 손녀가 오열하는 것을 보고 <섬집 아기>의 배경을 검색해 보았다.

이 가사는 한국전쟁 때 초등학교 교사였던 한인현님이 지은 시라고 한다.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하던 그는 부산 앞바다의 작은 섬에 갔다가 오두막에서 홀로 잠든 아이를 보고 가사를 썼다고 한다.

세월이 바뀌었지만 일하면서 아기도 키워야 여성은 지금도 어려움이 많다. 아침마다 눈도 못 뜬 아기에게 억지로 옷 입혀 밥도 제대로 못 먹이고 나가는 것은 일상이고, 출근해서는 애 키우느라 일 못 한다는 소리 안 듣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종일 보내는 아기가 걱정되어 허둥지둥 퇴근하는 모정, 60년도 더 전에 쓴 가사가 오늘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도 울리는 것은 이 시대에도 <섬집 아기>의 안타까움이 너무 많아서다.

다음주 크리스마스날에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들고 집으로 찾아온다고 어린이집에서 소식이 왔다. 서연이도 선물에 대한 기대로 달력의 날짜를 지워가며 산타를 기다리는 중이다. 엄마와 아기가 함께할 수 있는 그날만은 <섬집 아기> 없이 온전한 행복이 가정마다 머물기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윤재영 2016-10-11 12:52:35
섬집 아기.........
눈물나는 노랫말이 분명합니다...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예난 지금이나 엄마들은 아기의 안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해합니다
그렇게 저도 자식을 넷이나 길러냈구먼유....글 참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