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 달항아리
백자 달항아리
  • 박상일<역사학박사, 청주대박물관>
  • 승인 2015.12.17 18:56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時 論
▲ 박상일<역사학박사, 청주대박물관>

토기의 발명은 신석기시대의 혁명이라 불릴 만큼 인류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채집과 어로를 생계수단으로 하면서 끊임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던 원시사회가 점차 정착해 가는 단계에서 먹을거리의 저장과 조리를 위해 그릇이 필요하게 되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게 마련이다. 진흙으로 그릇형태를 만들고 불에 구우니 단단한 토기가 되었다. 600도의 낮은 온도에서 구운 연질토기에서 시작하여 1200도의 고화도 경질토기, 이어서 도자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자기는 넓은 의미의 토기·도기(陶器)·석기( 器)·자기(磁器:瓷器)를 모두 일컫는 말인데 그 차이는 소성온도에 있다. 모두 오늘날까지 만들어지고 있지만 고려시대 이후의 고급 생활용기는 자기가 주로 사용되었고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승화하였다.

자기는 고려청자에서 분청사기 조선백자로 변화하면서 다양한 모양과 무늬를 갖추게 되는데 모두 나름의 특성과 아름다움을 지니며 이들을 통해 시대상과 당시 사람의 취향을 엿볼 수도 있다. 고려의 귀족사회에서는 보기에도 고귀한 청자를 단연 애용했고 권문세족의 사치풍조를 타파하고자 일어난 신흥사대부는 질박한 분청사기를 좋아했다. 신흥사대부가 주축이 된 조선의 왕과 선비들은 성리학을 숭상하고 절제된 삶을 추구했으니 이들에게는 백자가 제격이었다. ‘용재총화’에 세종 때의 어기(御器)는 백자만을 전용한다고 했으며 ‘세종실록’에는 명나라 사신이 백자를 요구한 사실이 여러 번 전한다. ‘광해군일기’에도 왕은 백자를 사용한다고 기록했다.

백자는 무채색 민무늬의 순백자가 주류를 이루지만 철화 진사 청화 등 채색을 가한 것들도 있고 대접 사발 병 항아리 술잔 떡살 연적 제기 향로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기종이 있다. 그런데 아무런 문양장식도 없이 덩치만 크지만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것이 있다. 백자 달항아리이다. 달항아리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까지 유행한 대형 항아리로서 눈처럼 흰 바탕색과 둥근 형태가 보름달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정서가 가장 성공적으로 표현된 예술품이다. 최순우 선생은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이 어리숙하면서 순진한 아름다움에 정이 간다’고 백자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다.

청주대학교 박물관에서 명품100선 특별전을 열면서 백자 달항아리를 선보이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고서를 비롯하여 고려청자와 조선후기 청화백자가 전시실을 화려하게 비추는 사이에 달항아리 한 점이 놓여 있다. 비록 입술 일부가 깨지고 몸통에는 금이 가 있지만 유백색의 팽만한 자태가 관람자의 시선을 이끈다. 달덩이처럼 완전히 둥근 형태의 백자 항아리이다. 낮지만 안정된 굽과 45도로 각이 진 입술이 거의 대칭을 이루며 동체는 중간쯤에서 최대의 지름을 이루었다. 유백색의 유약이 전면에 고르게 시유되었으며 광택은 밝고 투명하다. 전면에 걸쳐 빙렬이 있고 몇 군데 금이 생겼지만 연륜의 무게감으로 더욱 친근하다.

예술작품은 시대정신이 표출되어 나타난 산물이다. 세상을 모두 포용할 것처럼 팽창하고 원만(圓滿)한 백자 달항아리의 진정한 가치는 둥근 몸집 안의 공간(空間)에 있다. 숙종에서 영·정조대에 이르는 문예중흥의 시기에 당시의 지성들은 달항아리에 무엇을 담고자 했을까? 그리고 정조의 사후 혼돈의 시대에 꿈도 사라지고 달항아리도 사라진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조영임 2016-01-06 13:25:20
달항아리, 품격있는 우리의 예술품이지요. 소박하면서 간결하고, 또 담박한 것이 마치 선비를 연상하게 하는 그런 작품이지요. 좋은 글 잘 읽었어요. 그런데 이 달항아리도 18억쯤 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