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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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영호<시인>
  • 승인 2015.12.1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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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 빈영호

간밤, 초저녁부터 질척거렸다. 눈인가 싶지만 눈이 아니다. 아주 작고 미미한 것이 싸락눈도 아니고 질척대는 게 그렇다고 비도 아니다. 딱히 말하자면 진눈깨비인데 기온이 0도에서 오르내리면서 비였다 눈였다를 왔다갔다하는 것이다. 오락가락하고 있으니 종잡을 수가 없다. 오늘 아침까지도 비도 눈도 아닌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다.

세면을 하면서 거울을 들여다본다. 그런가. 정말 그런가? 그런가를 연발하면서 또 거울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냥 하는 소리겠지. 듣기 좋은 말을 생각없이 그냥 던진 거겠지’하고 의심쩍게 반문하면서도 연실 거울 속 머리칼을 확인해 본다.

어느덧 반백이다.

나이는 속일 수 없다고 나이 들면 자연 머리가 하얗게 쉬는 것이 당연한데 오히려 검다는 게 비정상일 수도 있지 않은가.

머리가 희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이 들면 제일 먼저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치아가 약해진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쉰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그렇다는 것이지 모든 신체가 노쇠하여 변하는데 유독 이 부분이 제일 빨리 나타나는 쇠퇴현상이다.

아무리 그렇기는 하나 흰 머리가 검어졌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는 일로 옛날 야사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분명한 일은 내가 봐도 정말 머리가 전보다 검다는 것이다.

도로 검어졌다. 회춘(回春)이다. 돌아올 회, 봄 춘. 봄이 돌아왔다. 흰 머리가 검어지는 현상에 대해 말이 분분하다. 지인들은 검은 콩 때문이라고 했다.

잡곡밥을 좋아해서 보리나 조를 섞는데 요즘은 6~7가지를 섞어 팩으로 밀봉시켜 파는 혼합곡이 있다. 그 혼합곡에 꼭 콩을 넣어 밥을 짓는다. 콩이야말로 땅에서 나는 쇠고기라는 말이 있듯이 설명이 필요 없는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이다. 근데 밥에 넣는 콩은 검은 콩이라야 하고 검은콩 중에도 꼭 서리태라야만 제격이다. 서리태는 비타민 함량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단백질과 식물성 지방질이 매우 풍부하며 신체의 각종 대사에 반드시 필요한 비타민과 니아신 성분이 들어 있고 안토시아닌 색소가 많아서 검은콩의 대명사로 꼽히는데 안토시아닌 성분을 꾸준히 장기 복용하면 노화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나? 특히 검은깨와 함께 검은 색소로 하여금 블랙푸드라 불리는 검은 통곡물이 탈모를 방지하고 머리를 검게 한다는 소문이 나를 솔깃하게 하는 것이다.

올해는 유난히 강수량이 적었다. 비가 내려 줘야 할 우기에 비가 오지 않았었다. 강수량이 적었던 원인이, 장마 기간 전반에는 동서로 발달한 북태평양고기압과 상층 한기의 영향으로 장마전선이 주로 우리나라 남쪽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후반에는 연달아 발생한 태풍(제9호 태풍 찬홈, 제10호 태풍 린파, 제11호 태풍 낭카)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주변에 기압계가 불안정하여 장마전선이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서리태를 올해는 살 수가 없다. 인근 괴산 불정에서 콩 농사를 전문으로 짓는 후배도 울상이 되었다. 올 콩농사를 완전히 망쳤다는 것이다. 이유는 계절 잃은 미친 가을 날씨 때문이란다. 서리를 맞아가며 자란다고 하여 서리태라는 명칭이 붙여진 서리태는 생육 기간이 길어서 서리를 맞은 뒤에나 수확할 수 있는데 근래 시도 때도 없이 내린 비 때문에 콩 농사를 망쳤단다.

그렇다. 백해무익하다는 가을비. 올해 가을비가 온 날은 1973년 이래 가장 많았다. 강수량도 평년의 약 2.7배에 달했다. 전국 평균 강수량은 127.8㎜로 평년46.7㎜ 대비 267%였다. 평균 강수일 수 15일은 평년 7일보다 배 이상인 7.8일 많았다. 잦은 비 덕분에 열매가 맺혀지지도 않고 또 맺힌 것도 썩어 버리고 만 것이다.

껍질은 검은색이지만 속이 파랗다고 하여 속청이라고도 부르는 이 서리태, 내 머리카락을 검게 해주는 서리태를 올해는 정말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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