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와 부패
발효와 부패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12.1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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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세상에는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한 게 많습니다. 발효와 부패도 그 중 하나입니다.

며칠 전 섬사모(섬기는 사람들의 모임) 모임에서 발효와 부패에 대한 격의 없는 토론을 했습니다.

유사인 막내가 주제발표를 하고 돌아가면서 각자 느낀 점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여섯 번의 건배사와 여섯 잔의 술이 여섯 회원의 마음속으로 흘러내린 뒤라 모두 자신의 생각과 견해들을 가감없이 풀어놓았습니다. 관점과 대상과 지향점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생각과 견해를 갖고 있었으나 큰 틀에서 보면 대동소이했습니다.

썩는 과정은 쌍둥이처럼 비슷한데 결과는 천양지차였습니다.

발효는 긍정적이고 의도적이고 유익한데 반해 부패는 부정적이고 자연발생적이고 유해하다였습니다. 발효의 사전적 의미는 효모나 세균 따위의 미생물이 유기 화합물을 분해하여 알코올류, 유기산류, 이산화 탄소 따위를 생기게 하는 작용을 말합니다.

좁은 뜻으로는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미생물이 탄수화물을 분해하여 에너지를 얻는 작용을 이릅니다. 술, 된장, 간장, 치즈, 김장김치 등이 발효의 산물들입니다.

부패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 사상, 의식 따위가 타락함. 단백질이나 지방 따위의 유기물이 미생물의 작용에 의하여 분해되는 과정 또는 그런 현상으로 악취와 유독성 물질을 수반함입니다.

그렇습니다. 발효는 여러 가지 조건 충족과 숙성기간을 거쳐야하지만 부패는 스스로 또는 저절로 망가지는 것입니다.

발효는 좋은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누룩이 되지만 부패는 땅에 묻거나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오물이 됩니다.

발효된 술과 음식엔 맛과 향기가 있지만 부패한 술과 음식엔 악취와 구더기가 득실거립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발효된 사람은 세상을 이롭게 하지만 부패한 사람은 세상에 해악을 끼칩니다.

육체적 발효와 정신적 발효가 잘 된 사람이 발효된 사람입니다. 자신의 하고자 하는 일과 여가활동을 적절하게 수행할 수 있는 육체적 발효와 감정과 생각과 신념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침이 없는 정신적 발효가 잘 결합하여야 진정한 발효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온유하고 향기 있고 배려하고 섬김을 실천하는 발효인간을 인격자라 부릅니다. 누구와도 쉬 융·복합할 수 있어 친구도 많고 따르는 후배도 많은, 빈자와 약자에게 가진 것과 가진 힘을 내어주기도 하는 후덕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발효인간입니다.

부패도 정신적 부패와 물질적 부패가 있습니다. 정신적 부패는 감정과 생각과 신념에 균열이 생겨 정신이 나갔거나 정신이 썩은 상태를 말합니다. 부패를 막기 위해 음식물에 소금 뿌리고 냉장보관 하듯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시로 소금도 뿌리고 엄습해 오는 파리떼의 유혹을 물리쳐야 부패를 막을 수 있습니다. 정신의 타락은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성찰하고 깨어 있어야 청정할 수 있습니다. 물질적 부패는 검은 돈과 검은 물질에 현혹되거나 집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습니다. 정치인과 공직자가 부패하면 패망한 월남처럼 나라의 기강과 존립이 위태해 집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해악을 끼치는 자, 그가 바로 부패한 사람입니다.

세상이라는 식탁은 부패하기 좋은 여건과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신제가는 끝이 없습니다. 고인 물은 부패합니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야 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서 수많은 열매를 맺는 놀라운 은총을 묵상하면서.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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