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인생, 못 간다고 전해라
백세인생, 못 간다고 전해라
  • 정규호 <문화기획자 ·칼럼리스트>
  • 승인 2015.12.1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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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단상
▲ 정규호 <문화기획자 ·칼럼리스트>

한 살 한 살 나이가 더할수록 12월 쓸쓸함의 정도는 점점 심해지는 듯하다.

살가운 얼굴들과 해후하고, 소주잔을 나누면서도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센티멘탈을 숨길 수가 없다.

송년회에 모인 사람들은 제각기 깊으면서도 쓰라린 속내를 시원하게 드러내지 못한 채 바쁘다는 탄식으로 아쉬운 한 해를 또 보내고 있다. 서민 살림살이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는가. 차려진 식탁은 어쩐지 예년만 못한 데 걱정거리는 더 늘어나고 있음을 감추지 못한다.

이런 스산한 겨울, 무명이나 다름없던 중년 가수 이애란의 <백세인생>이라는 노래가 화제다.

‘6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7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8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로 이어지는 이 노래는 90세가 되면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고, 백세가 되어서야 ‘좋은 날 좋은 시’에 가겠다고 말한다.

전통 민요의 타령조 선율에 아주 단순한 가사와 리듬이 반복되는 이 노래 <백세인생>은 유튜브 조회가 200만회를 훌쩍 넘길 정도로 잔잔하게 대중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이 같은 조회수는 노년층이나 선호할 것 같은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이미 상당수 젊은 사람들도 관심을 두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충분하다.

과연 무병장수를 염원하는 인간 욕망의 크기가 어마무지하다는 점이 이 노래에 고스란히 투영된 셈인데,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 만큼 고령화 사회로의 빠른 진입을 생각하면 희비가 엇갈린다.

이 노래 <백세인생>의 2절에서는 80세의 자존심과, 알아서 가겠다고 하는 인간 스스로 의지의 나이를 90세로 삼을 만큼 왕성한 노익장을 내세운다.

마침내 피할 수 없는 ‘극락왕생’의 세계를 앞두고 장수를 염원하는 인간의 욕망은 어쩔 수 없겠다.

그러나 우리 사회 노동과 고용의 구조가 <백세인생>의 노랫말처럼 70세가 되어도 아직 할 일이 많을 수 있을지, 그런 세상이 올 수는 있는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거기에 ‘못 간다고 전해라’라는 가사가 되풀이되고, 그 뉘앙스와 상징성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차용되는 현실은 또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곰곰 살펴볼 일이다. 혹시라도 저 세상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권력에 대응하는 부정성의 정형화와 소통의 부재가 대중의 감추지 못하는 속내를 자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인류는 <욕망의 시대>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이 욕망의 대상은 화폐와 권력, 그리고 신체이며, 이 셋을 포괄한 사회적 성공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욕망의 시대 만개가 비가역적 경향이라는 점이다. 의미보다는 이미지가, 정신보다는 육체가, 가치보다는 욕망이, 과정의 진정성보다는 결과의 효율성이 절대 우위를 점하는 새로운 문명사적 도전 앞에 우리 인류는 서 있는 셈이다.’(김호기 저. 예술로 만난 사회 中)라는 말이 <백세인생>과 겹쳐지면서 세밑 쓸쓸함을 더욱 자극한다.

탈당이니, 분당이니 말 많은 제1야당의 탈도 다 그들만의 욕망일 뿐, 못 간다고 말한다 해도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고 세월이라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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