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얻으며 사는 삶
말을 얻으며 사는 삶
  • 김태종 <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 승인 2015.12.10 2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時 論
▲ 김태종 <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옛사람들이 산 것에 견주면 그래도 제법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고령화시대를 넘어 초고령화시대로 접어드는 요즘 세상에서 내 나이는 아직도 젊은이 소리를 들어도 이상할 게 별로 없습니다. 농촌에 가면 내 또래의 사람들이 청년회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결코 짧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어느 자리에서 보느냐에 따라 단 한 순간을 산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들은 것, 본 것, 겪은 것들이 적지 않으니 짧지 않았다고 해도 탓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싶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크고 작은 즐거움이 많았는데, 그 중 꼽을 수 있는 것은 살면서 듣고 보고 겪은 것들이 내 안에서 정리되면서 하나씩 말로 살아날 때의 일입니다. ‘재미있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십 분 후에 죽는다 하더라도 나는 내 삶을 떨이로 내놓지 않겠다’는 것이 얼른 떠오르는 내가 얻은 것들인데, 비교적 최근에 얻은 말이 하나 있어 꺼내 놓으려고 이렇게 입을 떼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 말은 ‘생명은 신비롭고 세상은 아름다우며 삶은 황홀하다’는 것입니다. 괴로움과 슬픔, 그리고 억울함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이런 말이 또 다른 폭력적 작용을 할 것임을 모르지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이 말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남이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은 것일지 모르지만 살아오는 동안 나 또한 그런 괴로움과 슬픔, 억울함을 적지 않게 겪기도 했고, 그런 내 경험까지 포함해서 이 말이 나왔다는 말은 덧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한다면 존재의 의미, 또는 무게라고 바꿔 말할 수 있을 터인데 대부분 종교적 용어로 인식되고 있는 ‘거룩함’이라는 말이 이 모든 것을 최종적으로 요약하여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가 누구든, 또는 그것이 무엇이든 존재의 가치나 의미, 또는 무게는 소중하고 숭고합니다. 그것이 짓밟힌 자리가 괴로움이나 슬픔, 또는 억울함의 자리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영달을 위해 남을 비극에 빠뜨리는 일들이 허다하게 일어납니다. 모든 범죄가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때로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기도 하고, 터무니없이 중상모략을 하기도 하며, 남의 불행을 즐기는 천박한 감정의 놀이를 하기도 하는 동안 거룩한 세계는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그리고 이 무너짐은 연쇄적으로 작용을 하면서 불행이 괴로움을 낳고, 고통이 다시 비극을 양산하는 악순환이 거듭됩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이 또한 여전히 신비롭습니다.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삶은 그래서 황홀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지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고, 사회에는 어떤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존재의 거룩함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수많은 현장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에 대한 상식적인 대응도 안 되는 맹점 투성이의 제도적 장치 앞에서 절망하는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헤아리면 그저 암담하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시 삶의 거룩함을 되찾자는 목소리를 듣고 싶은 겁니다. 그래야 한다는 소리들이 그리운 겁니다. 그런 지극히 상식적인 목소리들이 모여 힘을 갖게 되고, 그것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동력이 되는 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때, 우리 뒤에 올 사람들이 ‘사람이 살고 갔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싶은 겁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