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 배경은<사회복지사>
  • 승인 2015.12.0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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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 배경은<사회복지사>

그렇게 상담을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결국 그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그에게 다가가 가만히 등을 토닥여 주었다. 굵은 눈물이 모아 쥔 거친 손등 위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옆에 있어 주는 것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정신장애 3급의 등록 장애인이다. 그의 동생도 정신장애 2급으로 현재 정신병원에 장기입원 중이다. 형이 이렇게 무력한 눈물을 흘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동생이 자꾸만 퇴원을 강요해, 근래에 함께 살았는데 계속되는 피해망상과 돌발 행동 때문에 혹여 자신이 동생에게 죽임을 당할까 하는 공포 때문이었다.

자신도 정신장애인인데 동생도 같은 질병으로 장기입원 중이니 낙담할 만도 하다. 결국 다시 병원에 입원시키고서야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한다.

정신장애인의 특성은 겉으로 보기에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과 전혀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일상생활을 하기가 어려운 이들 대부분은 정부의 도움을 받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그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 종이를 규격에 맞추어 자르거나 접는 일을 하는 공장이다. 단순노동이지만 해마다 월급이 조금씩 오르는 재미와 돈을 모으는 성취감으로 한 시간 정도 되는 출퇴근 시간을 즐겁게 다니고 있다.

친구가 거의 없는 그는 주말에 하루 종일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지는 해를 바라볼 때가 있다고 한다. 나도 함께 마음이 먹먹해져 그럴 땐 어떻게 견디느냐는 질문에 입가의 미소를 띠며 시장에 가서 물건을 파는 사람과 간단한 대화라도 하고 나면 우울한 마음이 풀린다고 말한다.

그와는 주1회 토요일 아침에 만나서 산책한다. 직장생활로 힘들고 지친 심신의 스트레스를 산책과 가벼운 대화로 풀어내고 있다. 이야기의 주제를 하나 정해 가면 그는 수다스러운 동네 아줌마처럼 장황하게 풀어낸다. 직장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말하기도 한다. 간혹 활짝 웃는 모습에서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나도 오래된 친구와 한바탕 즐기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사계절이 두 번 지나도록 그를 만나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십 대 후반에 주위 동료와 여자 친구에게서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릴 자주 듣곤 했다. 오랜 서울 살이를 정리하고 고향으로 왔을 때는 환청이 계속 들렸다. 찾아간 정신과에서 조현명(정신분열)이라는 진단을 받고 한동안 절망과 자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냈다. 그러나 천성이 성실하고 착해서 한 번도 일을 쉬어 본 적이 없이 평범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방송대 농업과 1학년에 재학 중이다. 대인기피증이 있어서 출석수업을 대체시험으로 돌리고, 리포트를 제출하고, 기말고사를 치르며 열심히 학업에 정진 중이다. 나이가 더 들면 가까운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자 소망이 되었다.

심리학에서는 두려움과 무서움을 구분한다. 두려움은 내 안에서 생겨나는 감정이고, 무서움은 분명한 외부의 대상을 보고 생기는 감정이다. 그는 삶의 내외적인 것에 대한, 어쩌지 못하는 감정에 힘들었을 법도 한데 신통하게도 어려움을 지금껏 잘 극복하고 있다.

그를 만나며 삶이란 살아내고 살아지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존엄의 가치임을 증명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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