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품격
이별의 품격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12.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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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회자정리(會者定離)요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고 했던가? 만나면 헤어지게 되어 있고 떠나가면 돌아오게 되어 있다. 사람의 일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교직(交織)이라고 해도 결코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일반 사람일지라도 이럴진대 사람과의 만남을 업으로 했던 기녀(妓女)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겪을 수밖에 없는 숙명이었을 것이다.

만남과 헤어짐을 자주 하다 보면 만남도 헤어짐도 무덤덤해지기 쉽겠지만 간혹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고 하다. 아무리 직업적으로 오는 손님을 맞는다 하더라도 간혹은 마음에 들어 정이 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황진이(黃眞伊)는 기생이었지만 이별의 품격을 아는 낭만 가객이었다.


소세양을 보내며(奉別蘇判書世讓)


月下庭梧盡(월하정오진) : 은은한 달 빛, 뜨락 오동나무는 잎 다 떨어지고

霜中野菊黃(상중야국황) : 서리 맞은 들국화 노랗게 피었어요

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 : 누각은 하늘로 한 자나 높아지고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 : 사람은 취하였소, 술을 천 잔이나 마셨다오

流水和琴冷(유수화금냉) : 흐르는 물소리는 싸늘한 거문고 가락과 어울리고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 매화나무 피리 소리에 젖어 꽃 없이도 향기로워라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 내일 아침 우리 서로 이별한 뒤에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 헤어져도 마음일랑 저 푸른 강물처럼 길이 이어요



황진이는 기생이었지만 웬만한 남정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을 만큼 도도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니 일상적으로 찾아오는 손님들과 헤어지는 것은 이별이라고 간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기생으로 찾은 것이 아니고 진정한 시우(詩友)로 여겨서 찾아온 사람과는 시로써 친교를 맺고 어떤 경우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일도 있었다.

소세양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였다. 시인과 소세양과의 만남은 아주 특별한 것이었고 따라서 이별 또한 특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선 자연 풍광과 계절이 특별하였다. 달밤에 오동잎이 지고 서리 속에서 들국화가 피어 있는 늦가을은 뭔가 특별한 이별의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충분하다.

다음으로는 이별의 시간과 장소가 특별하였다. 달빛이 휘황한 늦은 밤에 하늘에 거의 닿을 듯 높은 누각에서 이별의 의식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가장 특별한 것은 이별의 의식이었다. 보통 같으면 간단한 수인사 정도였겠지만 여니 손님들과는 다른 특별한 정인(情人)과의 이별이었기에 뭔가 특별한 의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둘 사이에 그간 쌓인 정(情)의 크기와 이별의 고통의 깊이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무려 천 잔이나 되는 엄청난 술의 양이다. 그리고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악기인 금(琴)과 적(笛)의 소리에 주변 자연경관도 호응하는 것도 보통 있는 평범한 경우가 아니다. 물소리가 어우러진 금(琴) 소리가 차갑다거나 매화 향기가 스며들어 피리(笛)에서 향기로운 소리가 난다는 것이 그것이다.

평범한 사이인 사람들과의 이별은 그저 일상일 뿐 거기에 특별한 감회가 있기 어렵다. 그러나 마음으로 사랑한 정인(情人)과의 이별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별의 고통을 달래주고 좋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는 뭔가 특별한 이별의 의식이 있어야겠지만 이것은 사람마다 상대에 따라 달라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 경우에도 필요한 것은 바로 이별의 품격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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