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른
호른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5.12.03 17: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 반영호

가을음악여행. 기다림만큼 기대도 컸던 모처럼의 클래식이어서 일찌감치 입장하여 앞좌석에 앉았다. 대중음악회와는 달리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한 분위기는 사뭇 숙연하다. 상황을 판단한 진행자는 유명인사의 목소리를 흉내도 내고 모 가수의 노래를 모창도 해 가면서 경직된 분위기를 완화 시키고자 무던히 애를 썼다.

입장할 때 팸플릿을 받으면서부터 눈이 갔던 호른연주에 유독 관심이 갔다. 호른 독주를 관람해보지 않아서 더욱 호기심이 갔다. 소프라노. 바리톤. 테너 등 성악과 피아노 클라리넷 콘트라베이스 바이올린 색소폰 연주와 같은 클래식 외에도 대금과 25현 가야금 등 국악을 함께 보여주므로 써 지역여건을 고려한 프로그램이었음을 느끼게 했다.

기대했던 호른 연주는 공연 뒤쪽에 배치되어 한참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순서가 되었다. 일단 곡에 대한 설명과 악기특성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이 있었고 연주자가 소개되었다.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올랐다. 시작 전 음향 쪽 세팅부터가 달랐다. 마이크가 연주석 뒤쪽에 배치되는 것이었다. 혹시 다른 악기와 협연이 있거나 누가 나와 반주에 맞추어 노래라도 부르나 보다 싶었다.

입을 대야 하는 마우스피스가 옆으로 있는 플롯이나 대금이야 어쩔 수 없이 옆으로 소리가 날수밖에 없다지만 호른이 뒤쪽으로 나팔이 향했다는 건 예외의 일이다.

타 종류의 관악기와는 달리 호른은 소리 나는 나팔의 위치가 앞쪽이 아니라 뒤로 향했다는 점이다. 그러니 마이크도 뒤쪽에 배치되었던 것이다.

앞으로 나있어야 잘 들릴 텐데 왜 그럴까? 우선 호른이 타악기와 다른 것은 통 길이가 길다는 것이다. 길어서 펼친 상태로는 운반하기도 어렵고 사용하기가 불편했을 것이다. 호른의 길이가 약3.75m나 되니, 길다고 하는 2.75m의 트롬본보다도 1m가 더 길다.

연주가 시작되면서 재미있는 일이 또 생겼다. 연주자의 오른손이 보이질 않는다. 호른은 왼손으로만 밸브를 조작하는 특성이 있는데 다른 오른손은 벨 속에 넣는 것이었다. 처음엔 이런 황당한 일이 있는가 싶었다. 소리 나는 나팔 통을 막는다니 말도 안 되는 거다.

호른은 다른 금관악기들과 마찬가지로 컵 모양의 마우스피스에 입술을 대고 불어 관내의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를 낸다. 관은 둥글게 감겨 있으며 악기의 끝 부분은 나팔 모양으로 벌어져 있는데 이 부분을 벨(bell)이라고 한다. 악기의 재료는 놋쇠 합금이나 니켈 실버이며 성분의 비율에 따라 악기의 색깔과 음색이 달라진다.

트럼펫, 트롬본, 튜바와 함께 오늘날 서양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금관악기로 호른은 금관악기 중 가장 먼저 오케스트라에 도입되었고, 프랑스에서 유럽의 다른 나라들로 전해졌기 때문에 흔히 프렌치 호른(French horn)이라고도 불린다. 다른 금관악기에 비해 음색이 온화하고 부드러워 오케스트라에서 전체 악기의 소리를 모으고 감싸는 역할을 한다. 금관악기 중 중간 음역을 담당하고 있어서 화성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며 실내악곡이나 독주곡으로도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호른은 관의 길이가 매우 길어 깊은 울림을 지니지만, 깨끗하고 정확하게 연주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악기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호른을 보면서 온화하고 속 깊은 중후한 선비를 연상케 하는 것이다. 굳이 앞에 나서지 않아도 눈에 띄지 않아도 그의 존재는 확고히 인정된다. 겸손함이다. 호른을 인품으로 비유하자면 겸손함이다.

華而不實(화이불실).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8할 이상이다. 눈으로 보면 껍데기가 보이지만 마음으로 보면 본질이 보인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본질을 보고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모처럼의 가을음악여행. 호른에서 뜻하지 않은 철학을 배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