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찐개찐에게
도찐개찐에게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12.02 2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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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도찐개찐’은 ‘도긴개긴’의 잘못된 표현입니다. 윷놀이에서 도로 남의 말을 잡을 수 있는 거리나, 개로 남의 말을 잡을 수 있는 거리를 말합니다.

별반 차이가 없다는 뜻이지요. 조금 낫고 못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비슷비슷하여 견주어 볼 필요가 없을 때 쓰는 말입니다. 유사어로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와 ‘도토리 키 재기’ 등이 있습니다.

한때 KBS2-TV의 인기프로그램인 개그콘테스트에 ‘도찐개찐’이 등장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적이 있지요. 5명의 개그맨이 윷가락 같은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나와 세상에 회자되는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상황들을 익살스럽게 나열하고 풍자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요.

공중파의 위력으로 그때부터 ‘도찐개찐’이라는 말이 ‘도긴개긴’이라는 원래 말을 제치고 주인행세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사람들은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잘 생긴 놈이나 못 생긴 놈이나 눈 코 귀 입 똑같이 있고, 다 같이 먹고 싸고 자고 삽니다. 질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하루 세끼 밥 먹고 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잘나봐야 얼마나 잘 생겼으며, 못나봐야 얼마나 못났겠습니까?

부자라고, 똑똑하다고, 잘 생겼다고, 유능하다고, 운동 잘한다고 반드시 오래 사는 것도,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가난하다고, 무식하다고, 못생겼다고, 무능하다고, 운동 못한다고 반드시 일찍 죽는 것도, 반드시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불로초 먹고 사는 놈이나 상추 먹고 사는 놈이나 해가 가면 똑같이 나이 먹고 염라대왕이 부르면 저승길 가야하는 아침이슬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요즘 행세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가관입니다. 지가 똑똑하면 얼마나 똑똑하고, 지가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고, 지가 돈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온갖 위세를 부리며 잘난 채 하고 목에 힘주고 남을 욕되게 합니다. 꼴불견도 이런 꼴불견이 없습니다. 크게 보고 멀리 보면 다 도찐개찐들인데 말입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신의 허물은 모르고 남의 허물만 탓하는 개 같은 사람들이 많아서입니다. 좋은 것도 도찐개찐이지만 허물도 다 도찐개찐입니다. 허물없고 잘못 없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고상한척 해봐야 인간의 원죄는 같고 지은 죄도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러나 아기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천사입니다.

몇 백억 몇 천억원의 유산을 달고 태어난 아이도, 유산 한 푼 받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도 낳아준 부모에게는 다 소중한 천사이며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런 불평등이 존재하는 얄궂은 세상이지만 조물주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천부인권을 주었습니다. 갑과 을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힘 있다고, 그럴만한 위치에 있다고 갑질하지 말고 힘없다고 신분이 낮다고 갑질 당하지 말기 바랍니다.

다 도찐개찐인데 누가 누구에게 갑질을 한단 말입니까? 도가 났다고, 개가 났다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마세요. 다음에 빽도해서 단숨에 날 수도 있고, 신바람 내면 연이어 윷 나고 모 납니다. 누구든 반전의 드라마를 쓸 수 있는 게 윷판이고 인생살이입니다.

나쁜 것만 도찐개찐이 아닙니다. 비록 시작은 미미하고 보잘 것 없을지라도 끝은 창대하리라는 믿음, 그게 바로 도찐개찐의 꿈이자 가치입니다.

그대와 나도 도찐개찐입니다. 도찐개찐끼리 만났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서로 헐뜯지 말고 흉보지도 욕하지도 말고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고 삽시다.

서로 윷 나라, 모 나라 응원하며 알콩달콩 삽시다. 이 땅의 아름다운 도찐개찐들이여!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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