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직이 나쁜 까닭
보직이 나쁜 까닭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5.12.0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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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왜 교수가 보직을 오래 하지 말아야 할까? 농담 좀 하자.


첫째, 연구실의 나무가 죽는다. 연구실에 자주 오지 못한 죄로 화초들을 죽였다. 급기야 조교에게 맡겼지만 내가 기르던 나무는 내 손길을 아나보다. 죽은 것도 있지만, 살아도 가지만 엉성하다. 꽃이 좋으면 오랫동안 보직하지 마라.

둘째, 살이 찐다. 회식에 술자리가 많다. 나온 음식 안 건드릴 수도 없고, 따라주는 술을 마다하면 상대방이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살이 찐다. 맛난 것만 먹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다. 나처럼 골목 음식점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숨겨놓은 맛 집이 그립다. 해장국집, 찌개집, 생선집, 그런 단품 음식이 정말 맛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셋째, 옷값이 든다. 주로 콤비를 입고 다녔는데 행사가 많다보니 수트를 제대로 차려입어야 할 때가 많다. 학교의 얼굴이다 싶어서 함부로 하고 다니지도 못한다. 넥타이 색깔이 칙칙하다고 동료교수에게 혼난 적도 있다. 화사하게 다니란다. 주말도 함부로 입을 수 없다. 누구를 만날지 모르니 말이다.

넷째, 싫으나 좋으나 넥타이를 매고 구두를 닦아야 한다. 하도 열심히 맸더니 언제는 목주위에 상처가 난 적도 있다. 새 옷이 너무 까칠했는 모양이다. 구두도 자주 닦아야 한다. 다행히 아들이 군화용 스프레이 구두약을 소개해서 잘 써먹었다. 칙칙!

다섯째, 어설픈 외박이 많다. 출장인데도 바로 바로 돌아와야 해서, 학회 때 분위기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떨 때는 저녁회의 후 한두 시간만 눈을 부치고 차를 몰고 돌아와야 할 때도 있다. 외박을 하는 날 편히 좀 자겠다고 하지만 습관이 되어 눈이 떠질 때가 가장 허무하다.

여섯째, 말을 줄여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저렇게 듣는 일이 많은데, 말을 많이 했다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십상이다. 앞뒤 이야기가 많은데 앞 이야기만 듣거나 뒤 이야기만 듣고 취사선택이 되었을 때 난감해진다. 없는 이야기도 떠도는데, 꼬투리를 잡힌다면 그건 말을 흘린 내가 무조건 잘못이다.

일곱째, 사람들에게 꾸준히 죄를 짓는다. 일이 되고자 하니 남을 못살게 군다. 아무리 자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은 원망이 쌓이지 않을 수 없다. 손발이 맞는다는 느낌이 올 때는 즐겁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덟째,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한다. 교수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나 혼자 아는 것이 많지만 어디서 떠들 수 없다. 남자가 여자로 바뀐 채로 풍문이 돌아다녀도 묵묵히 들어야 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할 수 있는 대나무 숲이 절실해 진다. 직위와 관련되어 얻은 비밀을 지키는 것은 보직을 떠나도 마찬가지니 평생 업보가 되기 쉽다.

아홉째, 돈을 써도 남의 돈인 줄 안다. 내 돈을 써도 마치 공돈을 쓰는 것으로 오해한다. 정말 쓸 수 없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아예 현찰을 내고 만다. 그런데 주머니가 뿔룩해 보이지 않으려고 지갑도 없이 전화기에 신분증과 신용카드만 넣고 다니는 때가 많아서 여전히 오해받는다.

열째, 공부를 해도 욕먹는다. 논문이라는 것이 한두 해 지나서 나오게 마련인데, 보직 중에 논문이 나오면 마치 딴 짓한 것으로 오해받는다. 생각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고 했는데, 빈 머리 더 비었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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