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 정규호<문화기획자>
  • 승인 2015.11.2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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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단상
▲ 정규호

저무는 11월 끝자락에서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와 민중총궐기에서의 물대포, 그리고 한 농민의 치명적 부상 등이 계기가 된 듯하다. 특히 신문마다 요란한 <민주화 큰 산 떠나다>는 식의 호들갑은 굳이 따로 소리내어 애달다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차고 넘친다.

하여 내게도 빛바랜 추억처럼 가슴 깊은 곳에 숨겨졌던 민주주의의 영혼이 희미하게 두근거리는데, 이제 그 힘은 미약하기 그지없으니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가녀린 호흡이, 그리고 심장의 설렘이 많이도 흘러간 세월의 탓인지 아니면 습관적으로 종속되어 익숙해짐으로써 감각마저 무뎌진 탓인지는 여전히 분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YS의 갑작스러운 영면은 혼란스러운 많은 생각과 더불어 우려되는 두려움이 있으니 남은 이들의 약속과 다짐이 무색하다.

YS는 DJ와 더불어 우리나라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아니 어쩌면 두 사람의 인생 역정은 독재와 친일로 점철되는 현대사의 질곡과 모순을 극복하는 상징이었다.

영문 이니셜로 대표되는 상징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세습과 역사에 대한 굴절된 도전이 되는 셈인데, 아직 우리는 그 위험성을 제대로 감지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와 텔레스크린은 이미 광범위하게 우리 사회 곳곳에 깊숙하게 작동되고 있다.

그리고 그 폐해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움직임은 종북 또는 먹고사는 일의 위중함, 그리고 심지어 인격적 장애로 매도되면서 찬양과 경배의 맹목에 뒤덮이고 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는 섬뜩한 말 역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기록되어 있는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롯해 친일 행적에 대한 미화, 그리고 작금의 지배권력 구조 등이 소설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문제는 우리나라 민주화의 근본적인 허약성에서 비롯된다. 왕권에서 식민의 암흑을 거친 뒤 군정을 치르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민주주의의 어렴풋한 의미를 알게 되었으니 역사의 일천함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자.

그리고 제대로의 역사적 청산, 용서와 화합이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비롯된 군사독재에 대한 피나는 항쟁에도 불구하고 다시 민주주의는 정체된 듯하다.

야당은 YS와 DJ와 같은 상징성을 갖추지 못한 채 국민의 기대를 맞추지 못하고 있고, 사회는 계층과 세대, 이해관계에 따라 극심한 대립과 질시로 으르렁거리며 맞대결하고 있다.

정치 일변도로만 상징되어 전개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허약성과 새로운 형태의 권력, 그리고 상당수 국민의 맹목화는 민주주의에 대한 전반적 보편성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다.

언제 우리가 사회의 민주화나 경제 민주화, 문화 민주화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는가. 모든 국민의 일상이 민주주의의 토대에 놓여 있어야 한다. 3당 야합 같은 야릇한 수단이 아니라 과정조차 소중한,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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