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곡과 살며
석곡과 살며
  • 이효순<수필가>
  • 승인 2015.11.2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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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이효순

며칠 전에 갑자기 추워졌다. 이에 대비해 4월부터 밖에 자라던 석곡을 2층 주방으로 들여놓았다. 석곡이 머물렀던 자리마다 누렇게 단풍든 길쭉길쭉한 잎사귀가 떨어져 널브러진다.

한 해가 또 저물어 가고 있음을 본다. 주머니에 있는 ‘카톡’ 소리에 손 전화를 연다. 그곳엔 친구가 보낸 석곡 ‘만추’의 꽃 핀 모습이 담겨있다. 두 송이가 하얗게 피었다. 3년 전에 내게서 친구에게 보낸 것인데 그동안 잘 자라서 제 할 일을 해냈다. 참 대견하고 반가웠다.

석곡과 함께 지내니 가는 세월만큼 석곡도 새 촉을 많이 늘리고 포기도 튼실해진다. 적당히 햇빛을 보며 키워 키도 알맞게 자라 보기에도 흐뭇하다. 봄부터 물만 주었지 제대로 돌보지 않아 그 모습들이 부모 없는 아이들처럼 주인의 손길이 필요하다.

일단 바구니에 담아 2층 주방 공간에 들였다. 들이고 보니 정리되지 않은 모습들이 마치 이사 와서 짐을 푼 그 모습 같다. 싸늘한 공간에서 석곡을 한 번씩 진단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불을 넣을 상황은 되지 않고. 바구니에 담긴 석곡을 따뜻한 아래층으로 가져와 내 손길을 거쳐 처방한다. 죽은 가지는 잘라주고 썩은 줄기는 뽑아 버린다. 그리고 하얀 알갱이 거름도 준다. 또한 고아는 한 곳에 모아 살림을 낸다.

석곡을 자세히 관찰하면 3대가 한 곳에 함께 산다. 석곡의 꽃이 지고 나면 반드시 옆에 신아가 생긴다. 신아가 일년 동안 자라면 모주가 된다. 꽃이 피었던 어미는 멀둥한 줄기를 지키며 신아를 키운다. 이듬해 신아는 모주에 붙어살며 어미가 되어 꽃을 피운다.

모주는 천천히 말라가며 손녀를 보게 된다. 그런 후엔 생을 마감한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서서히 생을 마감하는 것처럼. 이런 순환 과정을 통해 포기수를 늘리고 시간의 연륜을 쌓아간다.

때로는 석곡의 줄기에서 꽃이 피지 않고 싹이 자라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뿌리의 상태가 좋지 않아 꽃 피는 것을 건너뛴다. 죽기 전에 종족을 이어가기 위해 싹을 틔우려는 생존의 본능이 그곳에서도 나타난다. 식물들도 이렇게 삶을 통해 생성과 소멸이 사람처럼 이루어진다.

친구가 보내준 카톡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꽃 식물은 키워 꽃을 보는 것이 최종의 목표다. 열심히 키워도 꽃이 피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부모들은 자식 결혼시켜 손주를 보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내가 결혼하여 쌍둥이를 낳았을 때 부모님은 얼마나 기뻐했을까. 대화도 안되는 식물이 지인에게 가서 잘 자라 꽃소식을 전하는 것, 그것도 기쁜데.

지난봄 분갈이할 때 살림 낸 고아들이 제법 잘 자랐다. 아주 작은 포트의 수태에서 키운다. 석곡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일이다.

이렇게 서로 나눔은 웃음을 불러오고 넉넉함 속에 마음의 평강을 갖게 한다. 또한 석곡으로 맺은 인연들은 시간이 지나도 꽃 속에서 그 사람을 그리며 생활하기에 마음이 넉넉해진다.

간간이 전해오는 석곡 소식. 나는 근무지를 마무리하고 떠나왔지만 그곳에 남은 향기는 오래도록 그들의 마음에 남아 한 송이 향기 나는 꽃으로 피리라.

석곡과 살며 삶의 과정을 연출하고 서로의 나눔 속에 살아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한 해 동안 잘 자란 석곡의 고아들이 나눔의 손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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