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과 기억
떠남과 기억
  • 최준 <시인>
  • 승인 2015.11.2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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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시간의 문앞에서
▲ 최준

대통령을 지냈던 분의 서거 소식을 들었다. 반세기에 이르도록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 정치사의 중심에 서 계셨던 분의 죽음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인간의 욕망과 삶을, 국가와 사회의 진정한 의미를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한 사람이 지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한 나라의 국민이 된다는 건 분명 운명적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행복과 불행도 마찬가지일 테다. 가난하고 어려운 나라에 태어났다면 그의 미래는 행복하기보다 불행할 확률이 훨씬 커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상의 어떤 곳에서는 포탄이 날아다니고 총성이 울린다. 전쟁터에서 하나뿐인 목숨을 담보로 방아쇠를 당기는 그들의 속내를 세세하게 알 수는 없다. 나름의 당위성과 필연성이 있겠지만 단지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통받아야 하는 무수한 이들의 애먼 불행은 어쩔 것인가.

지구는 하나라고 외치면서도 지구가 정말 하나인지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곳곳에 차고 넘친다. 나라들은 저마다 자국의 국민을 먹여 살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소위 잘 되는 나라는 가장 상식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나라다. 안 되는 나라일수록 비상식적인 행위와 행태들이 버젓이 저질러진다. 나라를 지탱하는 양대 축이랄 수 있는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다. 부정과 비리는 사회적으로 무력한 이들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노릇이다. 힘을 가진 자와 부를 가진 자의 속성은 그런 면에서 닮은꼴이다.

한 나라와 사회는 선을 지향하고 행복 쪽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맞다. 응당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좀처럼 쉽게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무수한 대가를 치러야 하고 삐거덕거리는 불협화음을 겪어내야 하는 모양이다. 한 발 내딛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우리의 현재가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다시 태어나도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나라의 국민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최소한 바다를 유랑하는 선상 난민은 아니고 밥은 굶지 않으니 이만 하면 다행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내부를 헤집어 보면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화합과 화해보다는 위화감과 적대감으로 팽배해 있는 일상, 법 때문에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삶에 불을 그어대고 싶은 마음들이 속으로만 이글거린다.

전직 대통령 한 분이 평생토록 애면글면하던 나라를 떠났다. 속이 후련하실까. 아니면 아쉬움이 많으실까. 그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게 된다. 이 자연법의 진리로부터 자유로울 이는 아무도 없다. 무명으로 세상을 살다 간 사람은 죽음도 조용하다. 절대다수의 죽음이 그와 같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선인으로든 악인으로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의 삶은 행복보다는 불행 쪽이었던 것만 같다.

국민의 자격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미래의 대통령은 인문학적인 소양을 지닌 분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정으로 잘 사는 게 넉넉한 형편인지 아니면 사람이 사람으로 사람답게 사는 사회인지를 아는 분. 앞에 서서 독촉하지 않고 사는 건 이제 이만하면 됐으니 여유롭게 천천히 가자고 속도의 완급을 조절해 국민과 더불어 보폭을 유지하며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그런 분 말이다.

일생을 나라를 위해 일해 오신 한 분의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분의 일생은 어찌 되었던 마침표가 찍혔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신념으로 저 세상에서도 지켜보고 계실 텐데, 진정한 이 땅의 새벽이 기다려진다. 너무 오래도록 불행한 역사의 어둠 속을 헤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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