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부
이모부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5.11.2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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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정명숙

대단하다고 한다. 배추 200포기로 김장을 했다는 말에 대한 반응이다. 그뿐인가, 배추김치 담그기 전에 친정이모부께서 미리 뽑아 주신 무로 동치미와 무김치를 담가 동생들에게 한통씩 나눠줬다. 지난해 가을 아버지가 떠나시고 시작된 우리 집의 김장 풍경이다.

김장하기 전 이모부께서 사고로 다치셨다는 소식을 친정어머니가 전해준다. 만사를 제쳐놓고 뵈러 갔다. 자전거를 타고 배추밭에 갔다가 이모에게 간식 먹일 시간이라 서둘러 오다 웅덩이처럼 패인 도로에서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셨단다. 가슴이 결려 몸을 잘 움직이질 못하셨다. 그럼에도 온 김에 가져가라며 아픈 몸으로 무를 뽑아 차 트렁크에 가득 실어주셨다.

중풍으로 쓰러진 이모는 16년째 거동이 불편해 집안에서만 생활한다. 병수발을 비롯해 집안 살림까지 이모부가 맡고 계시면서 틈틈이 농사지어 자식들에게 나누어 준다. 작년부터는 처의 이질조카인 내 몫까지 챙기신다. 아버지 떠나보내고 마음이 얼마나 허할까 싶어서란다.

이모부의 하루 일과는 이모로 시작해서 이모로 끝난다. 16년 동안 단 하루도 마음 놓고 외출한 번 못하고 화장실 출입과 씻기고 삼시세끼 차려주고 오전 오후 간식 먹이는 일을 지극정성으로 하신다. 오랜 세월 병간호를 하면서도 한 번도 싫은 내색하는 걸 못 봤다고 이모는 몹시 미안해하면서도 고맙다 한다. 타인이 이모부의 삶을 본다면 아픔과 고통뿐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모부는 아픔은 흘려보내고 고통에 미소 짓는 분이다.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환자지만 살아있는 아내를 보며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았으니 가능한 일이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이모가 결혼했다. 초등학교 때 방학만 하면 외가로 가던 내게 이모는 엄마 대신이었다. 그런 이모가 시집을 간다는 것이 달갑지 않았었다. 이모부는 낯설고 무서웠으나 나는 수시로 학교가 끝나면 이모가 사는 오송으로 가서 신혼부부 사이에 끼어 자고 등교를 하곤 했다. 그 버릇은 처녀 시절까지 이어졌다. 약주를 드시면 이모부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이 있다.

“너는 처조카지만 다른 놈들보다 내겐 특별한 놈이여”

이모부는 특별한 놈에게 주려고 아픈 몸으로 배추를 뽑아 다듬으셨다. 갓도 베고 대파도 다듬어 비닐봉지에 담아주고 내가 좋아하는 토란도 한 자루 담아놓고 감도 따서 내 몫으로 큰 소쿠리에 한가득 챙겨놓으셨다. 김장하는 날 가래떡 빼서 동생들과 나눠 먹으라고 쌀도 두말을 차에 실어주신다. 아버지가 안 계셔도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는 무언의 말씀이란 걸 안다.

친정아버지가 살아생전 당신 몸 돌보지 않고 자식들을 위해 그리하셨다. 돌아가시고 그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젠 이모부가 아버지처럼 다독여 주신다. 나는 아버지의 삶을 보고 배웠고 이젠 이모부의 삶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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