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의 길, 귀신의 길
부하의 길, 귀신의 길
  • 양철기<박사·교육심리>
  • 승인 2015.11.2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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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 양철기

BC 200년경 중국.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항우와 연합해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4년간에 걸친 전쟁 끝에 항우를 해하(垓下)의 결전에서 대패시켜 천하의 패권을 장악한 한고조 유방. 그에게는 묘한 징크스가 있었다. 그가 외상술을 먹는 날이면 이상하게도 그 술집에는 손님들이 꼬이는 것이었다. 그러니 술집 주인은 유방이 외상술을 먹는 것이 얄밉고 싫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손님이 많아지니 좋아했다. 따라서 유방은 외상을 할지라도 어느 술집에 가나 대환영을 받았고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유방의 외상술집 현상은 유방의 죽마고우인 노관이 꾸민 일이었다. 노관은 유방과 같이 풍읍(豊邑)에서 동일 동시에 태어났는데 그는 늘 그림자처럼 유방을 말없이 따라다녔다. 유방이 무리를 이끌고 돈 한 푼 없이 술자리에 앉아 외상술을 먹기 시작하면 슬며시 밖으로 나가 저작거리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웃을 술집으로 오게 해 술을 마시게 만들었다. 유방이 외상술 마시는 술집에 사람들이 모여든 것은 귀신같은 부하 노관 덕분이었다. 노관은 보이지 않게 상사인 유방의 권위를 높여주었다.

유방의 군대가 어려움을 뚫고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 입성했다. 점령지에 대한 약탈은 군사의 사기를 위해 허락이 되었다. 유방의 일급 참모 소하는 부하들을 이끌고 핵심 장소인 승상부로 향했다. 소하의 부하들은 평소 청렴했던 소하의 약삭빠른 재물욕에 감탄하며 그곳에 최고의 재물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며 한몫 챙길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승상부에 도착하자 소하는 뜻밖의 명령을 부하들에게 내렸다, 그곳에 있는 모든 문서와 지도, 장부 등을 남김없이 챙기라는 것이었다. 금은보화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부하들은 실망하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소하는 못 본체 했다. 그 후 소하는 승상부에서 거둬들인 문서와 지도 등을 연구해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나라의 내밀한 부분을 꿰뚫고 지리와 지형, 인구 등을 연구했다. 연구 자료는 훗날 유방의 여러 전투에 엄청난 도움을 주었으며 한나라 왕조 경영의 기초를 다졌다. 소하는 어느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귀신처럼 진행해 유방의 승리를 도왔다.

노관과 소하는 유방이 할 수 없는 일, 유방 혼자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보이지 않게 뒤에서 처리했다. 노관은 유방의 이미지 관리와 여론형성에 기여했고 소하는 유방이 챙기기 어려운 다양한 외부 지식을 쌓아 축적해 주었다.

‘샐러리맨 초한지’의 저자 이남훈은 노관과 소하의 이런 행동을 부하가 보스를 위해 걸어야 할 길, ‘귀신의 길’이라 표현했다. ‘귀신의 길’은 일을 귀신처럼 잘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진정한 부하는 눈에 보이지도 드러나지도 않게 진짜 귀신처럼 보스를 높여주고 보좌하고 이미지까지 관리하라는 이야기다. 귀신같은 부하는 보스가 놓칠 수 있는 디테일한 부분을 챙겨 결국 보스가 하고자 하는 일을 가능케 만든다.

아무리 남을 위한 일이라도 내가 엮여 있어 이득이 있지 않으면 언젠가는 떨어져 나가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상사는 귀신같은 부하의 사기와 열정의 온도가 떨어지지 않게 뭔가를 해주어야 한다. 상사의 부하에 대한 배려 또한 귀신같이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배려가 눈에 보이면 부담스럽거나 작위적으로 느껴져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사도 귀신같은 상사가 멋진 보스인데 유방의 ‘귀신같은 상사 모습은 ‘초한지’의 여러 부분에서 엿볼 수 있다.

2200년 전 중국의 ‘귀신 같은 부하’, ‘귀신 같은 상사’의 조합은 오늘의 한족 중심의 중국을 탄생시켰듯이 필자가 속해있는 조직도 ‘귀신같은 부하’들의 활약으로 아이들이 활짝 웃는 따뜻하고 행복한 충북교육공동체가 구현되기를 기원한다.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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