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송곳'이 말하는 것
드라마 `송곳'이 말하는 것
  • 임성재<시민기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5.11.2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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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임성재

JTBC 드라마 `송곳'이 화제다. 온라인상에서는 ‘꼭 봐야하는 드라마’, ‘안보면 후회하는 드라마’라는 댓글이 달리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2003년 외국계 대형마트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노동쟁의를 다룬 실화이다.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연약하고 시시한 약자들을 위한 한줄기 따뜻한 바람을 불어 줄 수 있는 그런 드라마가 되고자 한다.’라는 기획의도처럼 부당한 억압과 해고 앞에서 당당히 맞서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현장감 있게 풀어낸다.

이 드라마의 놀라운 점은 먼저 방송의 시점이다.

지금 정부는 노동개혁만이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 인양 노동개혁 5개 법안을 내놓고 밀어붙이고 있고, 노동계는 노동자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노동악법이라면서 크게 반발하고 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시점에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하는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두 번째는 이런 사회성 짙은 드라마가 지상파방송, 그 중에서도 공영방송이라고 자처하는 방송사에서가 아니라 종합편성채널인 JTBC에서 방송된다는 것이다. 공영방송마저도 정권의 입맛대로 길들여졌다고 지탄받는 이때에 사회성 짙은 드라마를 종편채널이 편성한다는 것의 의미는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라마에 나오는 명품대사들은 우리 가슴에 쏙쏙 들어박혀 심금을 울린다.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노동상담소장 구고신(안내상 역)의 대사이다. 우리 대부분은 주어진 현실에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결국 현실에 안주하고 외면하면서 정해진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미생의 삶을 살아가지만 분명 누군가는 정당하지 않은 것을 밝히며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처럼 뚫고 나오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송곳은 안주하며 타성에 젖어가는 이 사회를 조금씩 움직이게 한다.

“노동운동은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거란 말이오.”

세상은, 노사문제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립 구조가 아니다. 누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나약하고 비겁한 구석이 있는 시시한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노동자 위에 군림하며 멋대로 휘두르는 경영자들의 강함 속에도 내밀한 시시함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 구고신 노동상담소장(안내상 역)이 직원들에게 노동조합 가입을 권유하는 이수인 과장(지현수 역)에게 하는 말이다. 직원들과 밥을 같이 먹으면서 먼저 친해지라고 권한다. 바르고 정의로운 사람보다 친하고 가까운 사람 말을 더 잘 따르게 된다는 아주 소박하지만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진리의 말이다.

송곳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쥐어 짜내려는 기업의 논리로 움직이는 노동 현장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도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부당함을 견디어 내거나 혹은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던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와 몫을 알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노동자들은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것이 개인의 나약함과 불성실함 때문이라는 자기책임론에서 벗어나 눈을 구조 속으로 돌리게 된다. 이 척박한 대한민국의 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노동자로서의 책임과 권리 정도는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송곳은 노동자로서 당연히 알아야 하지만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노동법과 근로기준법을 가르치는 교육용으로도 손색이 없는 드라마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송곳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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