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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1.2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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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쌓기
김 주 환 <논설위원·극동정보대 교수>

좀 지난 것이기는 하지만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쓴 '트러스트'라는 책을 보면 21세기에 있어서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신뢰'의 문제를 들고 있다. 이념의 시대가 간 상황에서 국가발전은 그 사회의 신뢰관계가 형성과 정도에 의해 크게 좌우하게 될 것이라는 요지의 내용이 요즘 갑자기 떠오른다.

특히 그 책의 내용 중 우리나라를 신뢰가 낮은 사회로 평가를 하여 대목은 큰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와 같이 '정(情)'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사회적 신뢰가 낮다는 것이 처음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신뢰라는 것이 아는 사람보다는 낯선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욱 중요한 개념이라 한다면 분명 우리가 가진 사회적 자본으로써 신뢰를 그리 높게 평가할 수 없다는 생각에 도달하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생각하여 보면 현재 우리가 가진 문제의 출발은 대부분 낮은 신뢰에 근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 정부의 낮은 지지도 사회내의 이념적 갈등 등 그 근저에는 상대에 대한 불신의 문제가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현 정부의 낮은 지지도의 원인은 정책의 실패보다도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여당에 대한 불신에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 실패한 부동산 정책보다도 국민들은 퇴임순간까지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건설교통부장관의 모습에 더 큰 분노를 느낀다.

또 명백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6·25전쟁의 남침을 인정하기를 주저하는 통일부장관 후보자에 대해 국민들이 못미더워 하는 것은 아마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닐까 '코드인사' 곧 '믿을 사람 없음'의 등식임은 조금만 생각할 수 있는 이치이다.

또한 현 사회 내 이념적 갈등 역시 불신에서 출발하고 있다. 우파는 6·25전쟁에 대한 좌파의 책임을 잊지 않고 있으며 좌파는 독재에 대한 우파의 잘못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이들 모두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진지한 반성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또한 사실이다.

신뢰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3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사실 정향적 가치관을 확립하여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도 당위(當爲)의 문제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당위는 가치의 문제이고 이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해석의 문제이다.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에 대해 논하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스'일 뿐이다. 논쟁은 그 후의 문제이며 사회구성원들의 해석에 대한 합의가 당위이고 진리인 것이다.

둘째 법과 원칙(原則)에 대한 준수노력이 필요하다. 예외라는 미명하에 규칙과 내용이 훼손되는 곳에서는 신뢰를 논할 수 없다. 이는 신뢰할 수 있는 사회 믿음에 기반한 예측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이다.

셋째 반성과 관용이 상호 연계되어야 한다. 법과 원칙은 변경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이에 대한 책임과 반성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이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데 있어서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반성 없는 관용은 회피일 뿐이며 관용 없는 반성은 가혹하다.

결국 신뢰는 오랜 반복적 관계 속에서 쌓이는 믿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 또한 명심하여야 한다. 우리가 21세기의 선진적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뢰를 쌓기 위한 사회구성원 각자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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